한 그릇의 소고기국밥(수필)

조회 수 145 추천 수 0 2018.10.12 07:57:16

한 그릇의 소고기 국밥


                                                                                                     滸山 김현길


  나는 유별나게 옛날 일들을 많이 기억하는 편이다.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아닌 것들도

희한하게 사진을 보듯이 환이 회상이 된다. 내가 백 두 규모로 소를 키우던 적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한우 작목반을 만들어서 정육점

형태로 둔덕농협매장에서 소를 잡아 팔았다. 고현과 옥포, 통영에서 둔덕한우는 질이 좋고

 맛있다고 평판이 자자했다. 근래 둔덕농협에서 옛 건물을 헐어버리고 새 청사를 말끔하게 지었다. 

3십9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지은 건물 이층에 한우관 이라는 소고기 전문 식당을 꾸며놓았다.

농촌지역에 있는 식당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아주 깔끔한 시설을 갖추었다.

  유니폼까지 맞추어 입고 매너 좋은 종업원들이 상냥하게 손님을 맞고 있었다. 개업하는 날

지인들과 함께 소고기 국밥을 시켜서 먹었다. 첫 숟갈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아, 그래 이 맛이었어!'

아주 옛날에 내가 먹어봤던 그 맛이었다. 나는 불현듯이 옛날로 돌아갔다. 내가 스무 세살 한창 때에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적에 어머니가 사주었던 소고기국밥이 생각난 것이다.

1978년 3월14일이 나의 입영 날짜이다. 보통 일 년 정도 지나야 휴가를 보내주었으니까 유추해보니

아마 그 다음해 봄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 때 어머니가 사주시던 국밥과 함께 당시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휴가를 나오자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동네 몇몇 친구들을 대동하고 신나게 어울리며 놀러 다녔다. 

녹산마을 부둣가(당시 통영과 정기여객선이 오고갔기에 어쩌면 면사무소가 있는 하둔마을 보다 더

북적였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누가 처녀들이 많이 있는 어구마을로 놀러가자고 했다. 공짜배를

타고 가는 동안 배안에서 나는 술이 취해 코를 골고 잤다. (그때 녹산에서 어구로 아침저녁 출퇴근

시키는 배가 있었다.) 그곳에는 중앙수산이라는 굴 가공공장에 여자 기숙사가 있어 아가씨들이 괘

많았었다. 그렇게 망나니처럼 휴가를 즐기고 다녔다. 어머니가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아무개집

아들이 군복을 입고 술이 취해 지뻑거리고 다닌다고...

  귀대날짜가 뽀작뽀작 다가오자 어느 날 아침을 먹고 나갈려는데 어머니가 나를 붙잡았다 오늘은

나하고 충무병원으로 같이 가잔다. 너 발가락 그대로 해가지고서는 군대에 다시 못 보내겠단다.

내 엄지발가락은 발톱이 살 안쪽으로 파고들어가는 특이한 발톱이었다. 주특기가 105라

60m 박격포를 메고 행군도 해야 하고 산도 타야만 했다. 강원도의 가파른 산에서 내려 올 때 버티다

보면 엄지발가락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군장위에 덤으로 포를 지고 절뚝절뚝 걸어 가다가 십 분간

휴식시간에 신발을 벗어보면 늘 양말에는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상관에게 하소연 하며 보여주어도

군대에서는 그 정도로 가지고는 통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졸병이 군기가 빠졌다며 찍히기만 했다.

  충무 시민병원으로 기억한다. 내가 사는 둔덕면 죽전마을이 고향인 어머니가 아는 의사가 있는

병원이었다. 긴장했지만 의연하게 수술을 받았다. 그때 마취주사를 안 맞았지 싶다.(이 부분은 기억이

확실치가 않다.) 수술대라야 구두를 닦듯이 앉은뱅이 의자에 발을 올렸다. 의사는 메스로 사정없이

파고든 발톱을 과일 썩은 부분을 도려내듯이 발톱을 파내고 그 부분을 다시는 못 자라나게 박박 긁었다.

약간 현기증이 나고 속이 메스꺼웠으나 꾹 참았다. 작은 병원이라 간호사도 없이 의사 혼자서 피를 닦고

전광석화와 같이 해치웠다. 수술을 마치고 그 의사 왈 “고놈 군인답네” 수술하는 장면을 처음부터 빤히

쳐다보고 아얏! 소리 한 마디 않았으니, 의사가 더 놀라워했다.

 병원에서 나와 절뚝이며 걸어서 둔덕객선이 있는 맨데 쪽으로 걸어오는데 중앙시장 쯤 오니까 어머니는

소고기 국밥을 파는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자리에 앉더니 어머니는 국밥을 한 그릇만 시켰다.

내가 “어머니도 같이 시키지요?” 하니까. 속이 안 좋다며 끝내 한 그릇만 시켰다. 나는 눈치도 없이 나온

국밥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다른 국밥도 아니고 소고기국밥이 아니던가,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는 돈이

아까워서 자식이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것 같다. 군대에서 고생하고 온 자식을

더군다나 발가락 수술까지 시켰으니 영양보충을 시켜줄 참이었다. 줌치에서 돈을 꺼내 계산을 마치고는 

앞서서 나가셨다.

 그때 내가 먹은 소고기 국밥은 평생을 통틀어 제일 맛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혼자서

자식 다섯을 키우셨던 어머니의 애환과 땀이 베인 쌈짓돈,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당신은 오직

자식들을 위해서만 사셨던 것 같다. 정작 자신은 먹지도 않고 자식에게만 사주시던 그 국밥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어려운 고비 때 마다 이를 앙다물고 견뎌왔는지도 모른다. 그 꼬깃꼬깃한

지폐는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내 뇌리에 영상으로 각인되어 있다. 어머니의 절약하는 정신과 강한

생활력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의 순간에도 오뚜기처럼 일어날 수

있었다. 그때 당신은 먹지 않고 자식 맛있게 먹는 것만 물끄러미 보고 있었던 모정이 날 강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은 지금도 한쪽부분이 파여져 나간 기형 발가락이다. 못생긴 발가락을 볼 적마다

첫 휴가 때 일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수술 맞히고 소고기 국밥을 사주시던 어머니의 모습, 당신은

정작 먹지도 않고 자식에게만 시켜주던 그 모정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나는 어머니 영정사진 앞에서

눈물을 찔끔거린다. 그때 휴가를 마치고 군에 귀대해서는 다행히 연대RCT훈련을 빼먹었다. 선임하사가

붕대감은 발가락을 확인 하고는 차마 훈련을 보낼 수가 없었던지 나를 제외시켜주었다. 고참들의 눈총과

동기들의 부러움 앞에 미안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벌써 40년의 세월이 흐른 아주 옛날 일이 되어버렸지

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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