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선술집

조회 수 4758 추천 수 0 2010.08.27 08:55:40
김현길 *.199.70.164

고향 선술집



               滸山/ 김 현길


언제부턴가 손골 여시바우에는  
주둥이 쫑긋한 개여시가 살아
깜깜한 밤 고개 넘던 아버지들
발뒤꿈치 물고 따라온다던
그 전설의 개여시가
바글바글 색기를 칠 때면

부지런히 소들이 풀을 뜯는 동안
망루인냥 사방이 확 트인 여시바우에서
똘망똘망한 색기 여시 닮은 장난꾸러기들이
어디서 백조담배를 꼬나물고
벌써 부터 화툿장 꽃을 맞추고
더러는 히히덕대며 해 저물도록 놀다가
법동개 영감 깟밭 노랑해진 나뭇단은
욕짓거리와 함께 사라졌다

지지배들은 개쑥 뜯고, 나리꽃 꺾고
머슴애들은 해미당 할매 논 담부랑 밀어뜨려
뻔뻔스레 용심지 떡 얻어먹고
숨바꼭질 한답시고 바위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했던 그 말썽꾸러기들이
이제 머리칼 희끗희끗한 백여시를 닮아
선술집 탁자에 둘러앉아 소주잔에, 무용담에
어느새 눈두덩이 빨개져 우는 것도 같은.


*손골: 큰골, 못골, 야시골등과 같이 좁다는 뜻의 골짜기 지명
여시바우: 여우바위의 사투리
개여시: 구미호와 비슷한 뜻
개쑥: 산속에서 자라는 쑥, 일반 참쑥보다 떡을 해놓으면 찰지고 맛있었다.
깟밭: 산판을 여기서는 그렇게 부름
노랑해진: 노란색으로 물들어 말라가는
법동개, 해미당: 지명이름(마을 이름)
용심지: 백중날 한 해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벼논에서 지내는 일종의 고사 의식
담부랑: 돌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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