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짜오~~~ 제2편

조회 수 7814 추천 수 0 2005.06.19 23:28:40


신짜오~~~ 제2편
# 제1일/ 11월 24일
전쟁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박물관이라기보다 전시장이다 허름한 조립식 건물에 탱크 한대, 쌍발 비행기 한대 가 바깥에 전시되어 있고 건물 안에는 당시 베트남 전쟁 상황을 촬영한 사진들이  상태도 좋지 않게 인화 되어 걸려 있었다.
미군비행기가 베트콩의 포격으로 추락하는 장면, 베트콩 포로를 목에 사슬을 채워 배를 타고 수송하는 장면, 유명한 퓰리처상 수상 사진 소녀의 옷이 타서 발가벗은 체 절규하며 뛰어 오고 있는 장면 , 지뢰를 밟아 얼굴과 옷가지만 남고 몸통이 잘려나간 시체를 미군이 들고 있는 사진 등, 특히 고엽제 피해 상황을 알리는 사진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나는 고물 선풍기만 두어 대 돌아가는 초라한 전시장을 둘러보며 미국이 왜 전쟁을 해야만 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무모한 전쟁이었다고 말하는 가이드의 말에 공감했다.
전쟁이 끝난 미국과는 1992년12월 22일 재 수교를 했다. 북한과는 1950년 1월 30일 수교를 했는데 북한과의 수교는 사회주의 국가의 동질의 혈연적인 수교이며 우리 한국과는 우호 상호 교류를 원하는 실질적인 수교 이다.
1945. 9 . 2 호치민은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선언을 울면서 낭독하였다. 이것은 베트남 역사상 3번째의 독립선언이었다.
1954. 7월 "제네바협정"에 조인되어 북위 17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여 베트남을 남과 북으로 분할하여  대미 항쟁시대(1954-1973) 에 들어간다.
1955년 남부에 미국지원을 받은  베트남이 성립되어  대통령을 응오 딩 지엠으로 선출한다.  1956. 5월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에 대해서 통일선거 실시 협의 제의하였으나  남베트남 이를 거부하였다.
1962. 2월 미국은 사이공에 "남베트남 군사원조 사령부"를 설치하여 군사 고문단을 4,000명까지 증가시켰다.
1964. 8월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여 미군기가 북베트남 어뢰정 기지를 공습하였고 1965. 2월 미국군이 북베트남에 폭격을 개시하여 미국이 전쟁개입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발발 하였다.
1975. 4. 30 사이공 함락으로 베트남이 공산화 되어  통일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시대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전쟁 박물관 내부를 들어가 보니  포로를 고문하고 있는 모형 인형, 고문장소 모형도, 당시 포로의 목을 자른 단두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포로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 변기통을 옆에 놓고 있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모형감옥이 만들어져 있었다.
단두대는 목을 자르면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 담겨지는 통이 옆에 있었고 당시에 수십 명의 사람들의 목을 잘라서 통에는 피가 그득하게 고였다고 한다.
그리고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의 왼팔인 한반동 수상 사진과 호치민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호치민을 따르며 환영하는 모습들이 담긴 사진이 부착되어 있었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할될 때 300일간 국민들에게 거주의 선택권을 주고 그 이후에는 거주 이동을 제한하였다. 우리기업 과 베트남 인민들 중에서는 자유 민주주의를 찾아 남쪽으로 이주 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몇 컷의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관의 시설보다 낙후된 전쟁박물관이 베트남의 국력 지수를 느끼게 해주었다.
다시 대기된 버스를 타고 호텔에 체크인하기 위해서 이동하였다. 거리에는 또다시 오토바이 물결이다. 중학교 주변에는 오토바이로 애를 데리러 나온 주부들이 눈에 띠게 많다. 진풍경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자식사랑이 투철하다.
프랑스 문화 영향을 받은 건물들 노틀담 사원, 우리나라 청와대 같은 대통령궁 , 공연장 도시계획상 근린공원으로 설치된 공원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나와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도 보인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우리 일행이 베트남을 방문하기 며칠 전  안내한 한국인 관광객이 있었는데 그 일행 중에  69년도에 한국의 모 장군이 참모 6명과 헬기를 타고 가다가 헬기가 폭발되어 전사하였다. 그때의 미망인들이 베트남을 방문하여 주월 한국군 사령부 , 전쟁 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지금도 홀로 살며 남편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슬퍼 보이더라. 는 가이드의 말이었다.
프랑스가 92년간 통치한 베트남의 거리는 중앙에는 차가 달리고 양쪽에는 오토바이가 달린다. 도로 가장자리에는 뭐“ 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어 필리핀과는 달리 후진국의 도시계획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고 우리나라보다 도시계획 도로건물 부여 명 제도가 정착되어 역사가 있어 보인다.

건물 번호도 우리나라와 달리 건물 번호판을 붙이지 않고 번호를 두꺼운 금색 재질에 번호를 오려내어 번호 각각을 조립하여 맞추어 붙였다. 시공 상태로 봐서 오래 전에 설치 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현재의 베트남 GNP 는 450불이라고 한다. 98년말 기준 1인당 GDP  342불에 비하면 많이 상승됐다.

베트남 사람들은 돈을 벌면 장롱 속에 넣는다고 한다. 그래서 베트남 경제는 장롱 속 경제다. 돈을 벌면 달러나 금을 사서  궤짝에 넣는다. 그러나 일년에 한번 구정 때 궤짝을 연다.
자식사랑이 투철해서 자식을 위해서 돈을 쓴다고 한다.

베트남 정부에서는 장롱금고에 잠긴 돈을 열기위해서 화폐개혁을 해서 오만원짜리 화폐를 발행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 원인은 돈이 장롱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베트남 경제는 장롱 금고 경제라 한다.
오토바이 물결이 밤이 되면 스쿠터 물결로 바뀐다. 우리 한국처럼 베트남에도 오랜지족이 있다. 스쿠터 오랜지족, 폭주족도 있다고 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오토바이, 스쿠터를 타지 않고 대부분 걷는다고 한다. 가족들끼리 걸어서 쇼핑도하기도하고 외식도하기 때문 이다. 이날에는 은박지를 잘게 썰어 혼자 오토바이 타고 가는 사람에게 던지면서 “ 바보야 ! 혼자 다니냐 ! ” 유혹 하면서 뿌린다. 이것이 크리스마스 베트남 거리 풍속이라고 한다.
베트남은 낮에는 더워서 밤에 결혼식을 한다. 그것은 정말 그랬다. 호텔에 체크인 하러 들어가니 호텔로비에 신랑, 신부 그리고 들러리가 나란히 서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사이공 거리나 베트남 어디를 가도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 원인은 오토바이 사고가 나도 긴바지를 입으면 적게 다칠 수 있고 또 반바지는 유교사상의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란다. 대학교에서는 여학생은 치마를 입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는 반바지는 절대로 입지 않는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쌀 국수가 유명한데 쌀 국수 한 그릇에 800원~  1200원정도의 가격으로 먹을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베트남의 쌀 국수는 맛이 담백해서 나의 입맛에 맞아 괜찮았다.
거리의 오토바이 물결을 타고 가는 버스 안에서 내다보니 한사람도 등허리 굽은 사람이 없고 등이 쭉쭉 바르고 체형이 바르다.  왜 그럴까?  하고 가이드에게 물으니 종자가 그래서 그렇다나. ! ^^  남쪽 베트남 사람들을 낀족 이라는데 오리지날 베트남사람이며, 54개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라고 한다.

베트남에서 한때 오토바이 헬멧을 쓰라는 법이 입법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치정부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래서 시내 안에 운행하는 오토바이에는 헬멧을 쓰지 않는다. 베트남에서는 헬멧을 부를 때  전기밥통이라고 한다. 여름에 더울 때 전기밥통을 쓰면 얼마나 더울까? ^^
그러나 시 외곽에서는 헬멧을 써야한다. 속도를 많이 내고 사고 위험률이 높기 때문에 그렇게 정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시내에서도 간혹 헬멧을 쓰고 운행하는 오토바이를 보았다. 그런 사람들은 시 외곽에서 거주 하는 사람이 시내로 들어올 때 헬멧을 쓰고 들어온다고 하며 오토바이 세차비는 한화 1500원 정도라고 한다.
오토바이 사고 때문에 뇌수술이 발달한곳이 베트남이라고 하는데 종전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병원시설이 낙후되어 있어도 뇌수술은 잘한다고 한다. 오토바이가 많으니 사고도 많은 모양이다. 그런데 모두다 무질서 속에 질서를 유지하며 타고 가는 오토바이가 왜 사고가 많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토바이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때 우리나라도 대우, 삼성 조선 설립 초창기에는 아침 출근시간이 거의 오토바이 출근으로 이어진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근로자들 가정의 재무 구조가 좋아져서 모두 고급차를 타고 다니지만 우리도 이렇게 고급 승용차를 탄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불과 십수 년이다. 베트남은 지금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머지않아 베트남 거리도 승용차가 폭발하듯이 늘어나 교통 대란이 일어날 때가 머지않았다 고 생각했다.

특히 프랑스 강점기 시절에 만든 도로는 거의 일방통행 도로이어서 도로 폭이 좁아 향후 교통 정책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체제는 사회주의이나 모든 것은 자유주의 로 구성된 베트남의 사회가 공산주의 국가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베트남의 학제는 초등학교 6살부터 입학하여 7학년까지이고, 중학교 4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5 년 전문대 3년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데 중학교 1학년이 되면 개인별 적성시험을 봐서 공대, 인문대 쪽으로 나눠진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적성에 따라 공부한다. 고등학교 까지 의무교육이나 사실상 중학교 까지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 아오자이” 하얀색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입는데 디자인이 특이하다.  

사이공 현지 가이드 김중한씨 나이 31세 베트남 아오자이와 결혼했다. 베트남 교민은 2만명 정도 된다.
  가이드의 안내로 호치민시 옴리 사이공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룸 체그인 전 프리핑 룸에서 잠깐 관광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브리핑 룸 주변에 인형파는 가게가 있어서 베트남 아오자이 인형을  5달러 주고 하나 구입했다.
  이곳 호텔에는 7번 채널에서 한국 YTN 방송을 시청 할수 있다고 한다. 8시 20분에 로비에 재집결하기로 하고 일단 체크인부터 하였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전화하려면 0082-(지역번호 중 0은 생략) 55-000-0000 번으로 하면 된다. 베트남은 아직까지 통신 상태가 좋지 않다. 잠깐 동안 통화하는 것도 3달러정도 소요된다. 그래서 긴 통화를 하려면 콜렉트 콜로 하는 것이 기본 3분이기 때문에 그걸 이용하라고 권한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8시30분에 사이공 야경을 보며 유람선에서 선상 디너 쑈를 관람하기로 했다. 베트남의 밤 기온은 무덥지 않고 더운 기운이 있으면서도 오히려 상쾌하다. 우리나라의 푹푹 찌는 여름날씨와는 정말 다르다.
사이공은 1700년부터 무역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무역항이다. 그 사이공 강 위에 대형 유람선이 서너 대 정도 정박해 있다. 모두 외국 관광객을 위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패키지 관광 상품 중 일부이다.
베트남 현지 식은 중국 음식점처럼  한개 씩 한개 씩 차례대로 나온다. 이것이 베트남의 음식 문화이다. 50%는 프랑스, 50%는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두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물수건 , 물 은 모두 돈을  지불해야 된다.  유람선은 1, 2, 3 층으로 되어 있고 제법 넓다 1.2 층은 베트남 가무를 주로 공연하고 3층은 유럽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일단 배를 타면 일방적으로 하선하는 것은 금물이다. 배 선착장에는  소매치기 꼬맹이 아이들이 설쳐서 낭패를 본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도둑이 있기 마련이라고 가이드가 경고한다.

우리 일행은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로열박스이다. 이곳은  4인조 악단이 연주하고 가수가 나와서 노래하는 무대 앞이다 이곳에 일행들의 식단이 셋팅 되어졌다.
  가지고온 김 그리고 고추장을 꺼내어 소주와 함께 음식이 하나씩 나오는 것을 맛보며 천천히 저녁 식사를 했다.
  우리 일행이 무대를 마주한 중앙에 앉았고 주변에도 서울에서 온 한국사람 일행들이 식사를 함께하고 있어서 그런지 연주곡이 주로 한국 가요 만남, 칠갑산, 아파트, 애모, 대머리총각, 등 거의 한국 곡으로 이루어졌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서울에서 온 젊은 아줌마 일행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부르기도 했다.
우리 일행 대표 가수는 윤봉수 씨가 “ 가슴 아프게” 한곡을 멋지게  불렀고 베트남가수와 아내 그리고 이용선씨가 같이 합창으로 대중가요한곡을 신나게 불렀는데 곡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 일행과 이웃한 일행이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놀자 대만 사람, 일본사람들이 샘이 나는지 무대 중앙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으며 노래를 불렀다. 자기네 일행들에게 분위기를 잡으려고 경쟁 상태가 되었으나 우리일행과 한국 사람들의 수가 많아 그 세력에 눌려 한곡만 부르고는 슬며시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서 계속 무희가 등장해서  불쑈를 공연하고 관광객들의 흥을 돋우었다. 나는 사이공 강가 옆에 설치된 대형 상업용 광고 네온사인을 쳐다보면서 우리 한국 기업 광고는  설치를 왜 안했을까!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일본의 산요, 미쓰비시, 파나소닉, 소니 사 등 주로 일본의 상품 광고판만 붙어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외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우리의 상품광고 하나쯤 설치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강 주변 야경을 디지털 카메라로 몇 컷을 촬영하였다.
지루 하리 만큼 배의 운항 속도는 느려서 많은 시간이 흘러 유람선은 다시 출발선착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래도 1층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흥이 아직 식지 않아  배에서 내리지 않고 춤을 추며 놀고 있다.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놀기 좋아하고 흥이 많은 민족은 없을 것이다.
  
세계에서 효“의 지수가 1위인 나라가 베트남이고 이제 우리한국은 세계14위이다.  베트남의 유교 문화는 우리나라보다도 더 중국의 영향을 받아 강한 곳이다. 베트남의 택시는 코란도 같이 생긴 차인데 검정색으로 디자인이 독특하다. 한국의 60년대 그 옛날 드럼통을 펴서 만든 시발택시가 생각났다.
베트남 말로 “ 안녕하세요? 는 “신 짜오. ↗ 끝을 올린다.” 신 짜오.↘ 끝을 내리면 죽주세요“ 가 된다 그럼 아침식사 때 신 짜오. ↗신 짜오.↘ 두 번을 하면 ” 안녕하세요! 죽 주세요! 가 된다.
실제 현지해서 한번 해 보시기 바란다.
  감사 합니다“ 는 까만(C A' M  O' N ) ~ 이라고 발음한다.
신라면
짜장면
오뎅  이렇게 첫 자를 합치면 “ 신짜오(X T N  C H A' O )” 가 된다나. ~~

베트남은 아직도 점심시간을 11시30분부터 1시 까지 철저히 지킨다. 관공서도 마찬가지 일반회사도 마찬가지다. 점심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일단 멈추어 버린다. 그리고는 식사를 하러 나가버린다.
베트남 거리에도 노점상이 많다 저녁5시면 노점상 소탕작전이 일어난다고 한다. 어느 나라할 것 없이  사람이 사는 곳에는 노점상이 있기 마련이다.
거리에 오토바이 타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특히 청춘 남녀가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며 오토바이 연애에 대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가이드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운전하고 뒤에 탄 여자가 팔짱을 끼고 타고 가는 남녀는 아직 두 사람의 관계에 거리가 멀다. 즉 밥 먹었어 ~~ 정도의 관계다.
여자가 자기 무릎에 손 얹어 가는 모습은 좀더 가까운 사이 이고,
여자가 남자 허리를 껴안고 가는 사이는 좀더 진한사이이고
여자가 남자의 다리를 만지고 가는 사이는 더욱 진한사이이고
남자와 여자사이에 아기를 끼우고 타고 가는 사이는 결혼한 사이이고
남자끼리 껴안고 가는 사이는 호모관계
여자와 여자 가 껴안고 가는 사이는 레즈비언 이는 프랑스 문화가 유입 되서 그렇단다.

오토바이를 베트남에서는 “세간마이”라고 하는데 일본 “혼다 사” 제품이 많기 때문에 “세혼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토바이 드라이브는 베트남에서 일상 생활화 되어 있어 오토바이 문화는 여전히 베트남의 오랜 일상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베트남에서는 오랜 전쟁으로 남자가 많이 죽어 성비율이 남자가 4 여자가 6 이렇게 성비 구성이 되어 있는데 남여 삼각관계에서 여자 질투관계에 걸리면 작살난다고 한다.
베트남 여자들이 기가 세다. 전쟁으로 인하여 강인한 여성들이 많아 졌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 싸움에는 남자가 얻어맞는 단다. ^^
하노이 주정부는 여자가 40%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고 남성이 하는 일을 여자가 거뜬히 해낸다고 하며 남자들이 게으르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농촌에서 더 진하게 나타난다고 하니 베트남이 성장을 빠르게 하지 못하는 요인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다.

10시쯤에 사이공 옴리 호텔에 돌아와 투숙 하였다. / 2004-11-25 일 3 편 계속

   2편에 관련된 사진은 옥순룡의 세계여행기 종합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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