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짜오~~~~~~ 제3편

조회 수 6060 추천 수 0 2005.07.09 11:44:59


신짜오~~~ 제3편
# 제2일/ 11월 25일

6시 30분에 모닝콜이 울려 일어나 커튼을 젖혀보니 창밖으로 보이는 아침 일출은 구름이 하늘 전체에 엷게 깔려 흐릿한 여명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호치민시 대부분의 건물이 단층 건물로 지어져 넓게 보인다. 간간이 몇 십층 높은 건물이 한두개 정도 보이고 있으나 고층 건물로 인한 시야가 막힘이 전혀 없는 광대한 주택의 지붕들이 마치 물결처럼 밀려오는 느낌이다.
필리핀 마닐라 시와 그 규모를 비교하여 본다면 섬나라인 필리핀보다 오히려 좁게 보인다.
전체적으로 필리핀 마닐라시보다 규모는 작은 것 같은 느낌이드는 것은 왜 ? 인지 모르겠다.
그 옛날 남베트남 수도로서의 도시 면모로  볼 때  아직까지 빈곤의 모습이  후진국의 낙후된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조식 후 8시에 구찌 터널로 출발했다. 출발 전 일행이 버스에 한사람씩 탈 때마다 “신쨔오↗ 하며 인사를 버스 기사에게 시키니 무뚝뚝하던 버스 기사도 웃는다. 이 녀석  왜 자기에게 신짜오 ↗ 인사를 하는지 알까 모를까 !
호텔 입구 우측에 심겨진 나무가 가지가 아래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어서 나무 이름을 물어보니 가이드도 모른단다.
가이드가 억지로 시킨 아침인사는 “ 모두 합창으로 good morning vietnam "으로 하였다.
요즘은 도로사정이 많이 좋아져서 구찌 지역으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 15분 정도면 도착한다. 사이공 시민들 대부분이 자영업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70-80% 가 장사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이공 외곽 지역에는 섬유 공장과  다른 종류의 공장이 많다. 한국 사람들도 사이공에 많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혼자 살아가는 데는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세 사람이상이 모이면 단합이 약해진다고 한다.
현지 베트남 한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혼자만의 적응력으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경제구조는 한국을 모방하고  사회구조는 중국을 모방하고 있다.
호치민 시장이 사이공을 중국 상하이처럼 거대도시를 만들고 싶어 외국 자본을 유치하며 투자 요청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베트남에도 선글라스는 한국제가 많다고 한다.
구찌에서 활동하는 주요인사는 하노이 주정부 요인이 재직하고 있다.
클린턴이 하노이를 방문 했을 때 정부요인들이 모두 군복을 입고 마중을 나왔다고 한다. 그것은 미국 기를 죽이기 위한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시위라고 했다.
클린턴이 예정에도 없었던 사이공시를 방문 하였을 적에 거리의 청소를 시민들이 일사 분란하게 하여 사이공 시민의 단합을 잘 보여 주었다고 하며 베트남은 단합이 아주 잘되는 나라라고 한다.

베트남의 폭주족 수준은 우리나라를 능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베트남 경찰은 폭주족과 전쟁을 치른다.
호치민 시장이 한때 폭주족과의 전쟁을 선언한 적이 있었는데  경찰은 말을 듣지 않는 폭주족 오토바이 타이어 링에 방망이를 끼워버렸다, 그러면 상황종료이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곤봉으로 쳐서 제압한다. 하지 말라면 안해야지 왜하냐 ! 하면서,
단속 업무가 엄청 강해서 시민들이 불법을 자행해놓고 단속에 걸리면 아무 말을 못한다고 한다.
  구찌로 가는 중 비둘기 부대가 만든 도로 “ 따이한로” 를 지났다. 워낙 튼튼하게 도로공사를 해서 아직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덩치 일행이 베트남 관광을 왔다. 덩치도 큰사람들이 무더운 날씨의 베트남을 관광 하려니 엄청 고되고 땀도 흐르고  가도 가도 끝도 없는 오토바이 행렬이 스트레스며 모든 것이 지루하다.
전쟁 박물관과 구찌 땅굴을 관광하려 가는데  일부는 차에서 자기만 하고 관광 할 생각은 아예 없다.
전쟁 박물관을 둘러보니 그곳에 전시된 사진들이 지뢰를 밟아 몸통은 날라 가고 머리만 남은 것을 미군이 치켜들고 있는 모습, 모두 피 흘리며 쓰러져 죽어있는 모습들로 계속 관광이 진행되었다.
전쟁 박물관 관광 후 이윽고 구찌 땅굴에 도착하여 그곳에 걸린 사진  땅굴 모형 , 그리고 살상용 함정 부비트랩 모형이 전시된 관광객 안내소에서 가이드가 설명을 하자 그중 덩치  보스인 듯한 사람이 가이드에게 낮은 목소리로
“ 아가 ”............... ?
“이제 피 그만 보자”
“어차피 우리 삶이 전쟁이다”
“담배나 피자”
“예”
가이드 --- “저도 담배 하나 피워도 되겠습니까?”
“그래 괜찮다.” 피워라 “
가이드가 어물거리니  
“괜찮다” “ 괜찮다니까 ! ”
그래서 가이드가 담배 한대를 덩치 앞에서 피웠다.
그런데 옆에 있던 작은 덩치 하나가 가이드를 째려보며 좋지 않은 인상으로
다섯 번이나  헛기침을 했다.
가이드는 순간 등에 식은땀을 흘렸다.
다시 가이드가 구찌 땅굴에 도착해서 땅굴에 들어가는 설명을 하니

“아가”
“우리는 깜깜한 곳은 싫다”(깜깜한 굴 = 감방)
“안 들어간다.”
“아가 ! 밥이나 먹자”
“!”
가이드는 “그럼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이날 가이드의 하루 일과는 가시 방석에 앉은 것처럼 긴장되었는데
그 덩치 일행과 관광이 끝난 후 헤어질 때 보스의 말 중에서  
“아가 ! 다음에 또 보자” 하는 말이 제일 무서워
그 당시 재직하던 관광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급히 옮겼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
가이드의 이야기에 한참 웃었다.

  베트남 농촌지역에는 쌀 종이를 만들어 그 쌀 종이에 쌈을 싸먹는다고 한다. 베트남의 농촌 지역도 우리 한국의 농토와 다를 것이 없다. 한편에서는 벼가 익어가고 있다.
구찌로 가는 도중 길가에 헬멧이 몇 개 보인다. 간판에는 ‘핼멧 빌려드립니다.“ 라고 쓰여 있다. 헬멧을 쓰고 가는 구간에서는 빌려 쓰고 가서 나중에 종점에는 ”핼멧 반납 하세요“ 라는 문구가 씌여 있는데   이런 것도 베트남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절약적인 방편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진풍경이다.
베트남의 행정 구역단위는 특별시= 성- 시- 군- 면, 리 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가 가는 곳은 호치민시. 구찌군 이다.
베트남 역사는 거의 전쟁역사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작고 왜소하지만 강인하다. 구찌 땅굴은 길이가  250키로 미터이다. 모두 호미와 베트남 여자의 손톱을 길러 땅을 파서 만든 땅굴이다.
이곳 사람들은 자기 고장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조상이 대대로 물려 준 땅을 지키고 일구어 관리한다. 부모가 죽으면 농토 한가운데 묘를 쓴다.  농토 한가운데 부모 묘를 매일 보면서 농사를 짓는다. 실제로 하노이에서 하롱베이 가는 길가에는 농토 한가운데 쓴 묘가 많이 있었다.  
이제는 농촌에서도 우마차를 이용하지 않고 경운기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종전에는 땅 한 평이 30-50원 했는데 이제는 3만원-5만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미국에서 투자가 들이 공원을 조성하고 개발 붐이 일어서 땅값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구찌 지역은 4천만원정도 있어야 집을 지어 생활 할수 있다고 하니 다른 곳보다 땅값 비싸다.
“ CU CHI TUNNIL”  이라는 팻말이 나오자 넓은 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그 넓은  들이 깨밭 같아 보인다.
서울에서 아주머니 일행들이 베트남으로 계를 모아 관광을 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 CU CHI TUNNIL” 넓은 들이 있는 이곳을 지나다가
어느 아주머니가
“ 저 밭에 심겨진 것이 뭐냐? 하고 묻자
한 아주머니가 ”콩밭 같다.  ” 라고 답하자
“ 저 밭에 심겨진 것이 뭐냐? 하고 물은 아주머니가 “콩밭 같다. “ 라고 대답한 아주머니에게 단한마디로
“깨 밭이야 ! x 랄 하네.   !!!!  ” 로부터 시작한 자존심 싸움이  
“깨 밭이야” “ 아니야 콩밭이야 ”
“깨 밭이야” “ 아니야 콩밭이야 ”
“깨 밭이야” “ 아니야 콩밭이야 ” 로 ~~~~
일정 끝날 때까지 끝내 서로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싸우더라는 것이다.
가이드도 이때에는 어느 편을 들어 말을 할수 없는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땅굴 관광을 마치고 난후  “깨밭이야  x 랄 하네.” 아주머니가 가이드와 헤어질 때 낮은 목소리로 정색을 하며 “다음사람이 이곳에 와서 저 밭을 무슨 밭이냐고 물어 보면 꼭 깨밭이라고 이야기 해줘” 하며 신신 당부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말 저 밭에 심겨진 것이 깨가  맞나?” 하고 썰렁하게 물어 보니  가이드는 자기도 깨밭인지! 콩밭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
아주머니들의 자존심 싸움 정말 대단하더라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일행들은 다시 한참을 웃었다.
깨밭 , 콩밭 아주머니 일행들은 구찌 땅굴을 관광하고 난후 사이공 야경 유람선을 타면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식탁이 있는 의자에는 앉지 않고 유람선상 바닥에 퍼져 앉아서 식사를 가져오라고 하여 가이드가 식탁에서 앉아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하라고  설득을 해도 끝까지 맨 바닥에 앉아서 저녁식사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이드는 “정말 우리나라 아주머니들 자존심 대단합니다. ” 라는 멘트를 남겼다.
  잠시 후 조림이 잘되어 있는 경관이 나타났다. 가이드는 고무나무가 심겨진 숲이라고 한다. 나무가 질서 정연하게 오와 열을 잘 맞추어 심겨 졌다.
  이곳에서 잠시 내려 고무나무 진액을 채취하고 있는 광경을 둘러보았다. 나무의 껍질을 벗겨 작은 홈을 만들어 그 아래에 칡덩굴 같은 줄로 단단히 야자수 껍질을 고무나무와 고정 시켜 그 껍질 바가지에 하얀 고무 진액을 받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질서 정연하게 조림된 고무나무 숲을 배경으로 단체사진과 부부 사진을 몇 커트를 촬영하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베트남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와 우리 일행들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다. 방여사가 가지고 온 한국 사탕과 초콜릿을 나누어 주었다. 애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며 때 묻지 않은 천진한 모습이다.
잔돈을 바꾸지 못해 애들에게 용돈을 주지 못하고 서운한 마음으로 출발하니 곧 CU CHI TUNNIL 이 있는 광장에 도착하였다.
이곳도 벌써  한국인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몇 대 주차해 있었다. 주차장에는 엉성하게 만든 의자를 배치하여 쉴 곳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구찌 땅굴에 들어가기 위해 수속을 밟았다. 기념품가게에는 M16 총알 M1 총알, 칼빈 총알로 만든 기념품이 있었는데 조잡해서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더구나 살상용 탄환으로 기념품을 만들어 놓으니 보기에도 섬뜩하였다.
구찌 땅굴을 처음 보는 순간 정말 베트남 사람들이 정말 왜소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당시 땅굴 속으로 숨어 들어가던 베트콩을 잡으러 미군이 땅굴 속으로 쫓아 들어갔다가 덩치가 커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땅굴이 워낙 방어용으로 만들어져 땅굴 내부에도 경사각을 만들어 쫓아 들어간 미군이 수류탄을 까서 땅굴 속으로 던지면 그 경사각 때문에 도로 미군 쪽으로 도로 수류탄이 굴러 내려와 미군이 폭사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하니 구찌 땅굴의 치밀한 설계 전략이 베트남을 통일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는 가이드의 설명과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 지역은 굳고 점성이 강한 흙으로 덮여있어 땅굴을 파기에 안성맞춤인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전쟁이 일어나자 베트콩들은 미국 측의 강력한 화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이 터널을 보수하고 확장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이 터널은 지하 약 7m 정도의 굴을 거미줄처럼 파내고 한쪽에서 미군들이 공격하여 들어오면 한쪽 통로는 바다로 나가는 강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 미로를 통해서 대피하였다고 한다.
땅굴 안에서  의, 식, 주 모든 것을 해결하였고 특히 밥을 지을 때 굴뚝에 연기가 나가지 않도록 연기 거름 장치를 사용했고 굴뚝의 모양을 개미집처럼 만들어 위장해 놓아 감쪽같이 미군을 속일수가 있었다.
이 지역은 또한 미군 측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 1968년의 구경 대공세(The Ofensie)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이 터널 주변에는 전쟁 당시의 부서진 탱크와 헬기 등이 산재되어 있고 대나무를 이용한 함정 부비트랩 등이 보전되어 있어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땅굴에 들어갈 때는 랜턴을 켜야 하며 자신의 몸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입구에서 들어가려다가 포기했다.
공기가 잘 통하지도 않고 습하고 후덥지근한 좁은 굴에는 덩치가 큰사람은 들어가기가 무리였다. 그래서 나와 몇몇은 굴속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도 아내는 100m나 되는 굴속을 헤집고 나와 나보다 멋진 체험 관광을 하였다.
당시에 고엽제가 뿌려진 이곳은 다시 작은 나무가 자라나고 있었으나 아직도 그 영향으로  농업생산이 부진하며 일부 베트남 사람들과 우리나라 참전용사들이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또 한가지 가공할 것은 부비트랩 이었다.
한번 걸리면 절대로 살아나오지 못하는 함정 부비트랩 그것 역시 살상무기로서 아주 과학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모형도를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전쟁 때 사용된 것을 상상하면 그 광경이 끔직했다.
이 땅굴의 길이는 250킬로미터나 되는 대 규모였으며 종전 후 미국 참전 병사들이 땅굴을 방문해보고 한탄하였다고 한다.
  왜 승산도 없는 전쟁을 했을까 ! 하고 통탄하였다고 한다.
“이데올로기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자국의 지속적인 이익확보를 명분으로 시작되는 전쟁은 인간이 언제 건 무자비한 야수로 변할 수 있다” 는 끔찍한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곳이었다.
“전쟁 안에는 어떤 낭만도 있을 수 없다.” 전쟁은 어떤 명분이던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이론을 상기 시켜 주는 구찌 터널의 모습이 인상에 남는다. / 다음 4 편에 계속


* 거제포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08-05 09:12)

거제포토

2005.08.05 09: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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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진은 옥순룡의 세계여행기 종합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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