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짜오~~~ 제4편

조회 수 6637 추천 수 0 2005.09.15 17:42:27










신짜오~~~ 제4편
# 제2일/ 11월 25일
  땅굴 관광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다시 사이공으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 하였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프랑스와 베트남 간의 전쟁이다. 이 전쟁을 끝낸 전투는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 베트남 북서부, 라오스와의 국경에 접한 라이챠우성(省) 남부에 있는 도시. 인구 약 4만 5000』전투였다.
당시 프랑스는 베트남의 산악지대의 중심인 디엔비엔푸  베트남 서북쪽 산악지역에 비행장 두 개를 가진 군사기지를 건설하였다. 여기에 접근할 수 있는 도로는 하나도 없었다. 병력과 보급품은 모두 공중 수송을 통해서 공수하였고 이곳에 1만 5천 명의 프랑스 최정예 부대가 주둔하였다.

호치민 루트 는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국경을  주변으로 전쟁 물자를 공급했다. 이런 내용은 “ 지옥의 묵시록” 영화에도 나온다.  
바로 이 철의 요새라고 했던 디엔비엔푸가 1954년 1월부터 베트남 인민해방군의 공격을 받아 3개월 만에 함락되었다.

단 한 대의 헬리콥터도 가지고 있지 않던 북베트남이 공중 무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철의 요새를 공격해서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05 미리 자주포를 분해하여 소와 사람의 힘만으로 산꼭대기로 운반하여  폭격하고, 비행장 밑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비행기가 출격할 수 없도록 하여 프랑스군을 전멸시켰다.
  3개월 여 치열한  전투 끝에 프랑스군 5천 명이 사살당하고 생존자 1만 명이 전원 항복했다. 프랑스 드카스트리 사령관을 비롯한 1만 명이 포로로 잡혔는데, 드카스트리 장군은
“항복은 해도 백기는 들지 않겠다.” 우리는 베트남의 자전거문화 즉 강인한 자생력 때문에 졌다“고 말했다한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낮추어보고  설마, 설마 하다가 졌다. 이 전쟁은 세계를 경악시킨 사건이다.
프랑스는 이 전투에서 패배하여 철수했다. 그것이 1954년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식민지 군대가 제국주의 본국의 군대를 물리치고 항복을 받아 낸 전쟁이었다.

베트남  보 구엔 자프 장군은 “ 우리 베트남을 알면 쉽사리 베트남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쟁을 해도 패배한 적이 없다.”  는 말을 남겼다.
우리나라와 베트남과의 수교는 이승만 대통령 때 수교를 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GNP는 50달러 베트남의 GNP 는 110달러 당시 베트남 안남미로 원조를 받은 적이 있다.
박정희 정권 때 미국으로부터 베트남 참전 미군수뇌부와  한국전쟁 때 참전한 부하들이 한국군을 월남 참전 권유를 하였으나 박대통령 생각 좀 해보겠다. “외무 장관 요즘 북한의 동태가 어떠한가!” 하고 딴청을 피우는 배짱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 말은 월남 참전도 미국에게 쉽게 응하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미국에게 적당히 배짱을 부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제스츄어를 하였다고 한다.  

한국군 베트남 참전 은 공병대, 태권도를 잘하는 맹호, 청룡, 백마, 전투병 부대, 등 50,300명이 파병되어 5,000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태국은 베트남 참전 병들에게는 월급 70-80달러를 지급하고 장교들에게는 120달러를 지급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군은 병은 30-40달러, 장교들은 80달러 , 고급장교들은 100달러를 지급하고 나머지 돈은 우리나라 도로 만드는데 사용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 핵을 만드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소설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베트남 전  고엽제 문제와 데모, 그리고  한겨레신문의  베트남 양민 학살 문제 거론 등 이 신문보도가 될 즈음에 한국군  참전 용사가 베트남에 내방했다. 이 내방 사항이 베트남 신문에 보도되자 방문을 담당한 현지 가이드가 “ 반동이라고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 방문 사항을 베트남 인민 청년단장이 기자들에게  취재를 못하게 했다.
그러나 사이공 시장은 “ 이제 우리는 통일이라는 숙제를 이루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과제만 남아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고 한다.

  요즘 베트남 사람들이 회자하는 내용은 단연 한국 군인정신이라고 한다.
“한국군은 정말 군인다운 군인으로서 우리와 싸웠다. 미국 군인은 군인도 아니다.”

베트콩이 한국 군인을 사로잡아 땅을 파고 목만 내어 놓고 묻었다.
“ 너의 부대가 어디 있느냐 ? ”
“ 나는 말할 수 없다.”
“ 나는 전우를 팔아먹지 않는다.”
그래서 베트콩은 한국군인의 목을 잘라 참수 했다고 한다.
잠시 후  한국군이 돌아와 전우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난후  오열하며 총을 사방으로 쏘아 절규를 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얼마 전 베트남 참전 용사 일행이 사이공을 방문하고 구찌 땅굴을 방문한 연후에 그중에 조끼를 입은 복장을 한 남자 한분이 소주도 마시지 않고 조용히 여행을 하다가 어느 곳을 지나쳤다.
그런데 갑자기 차를 세워 달라고 해서 차를 세우니  차내에 있던 소주병을 들고 차에서 내려  어느 곳으로 마구 뛰어 가더니 그곳에서 소대장님의 이름을 부르며 큰절을 올리고  통곡 하더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 전사한 소대장은 베트콩에게 포위되어 철수를 하는 시점에 소대원들을 전부 헬기로 후퇴 시키는 과정에 소대원들을 후송하는 헬기가 뜰 수 있도록 엄호사격을 하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그런 소대장의 넋을 기리며 오열하며 추모 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88년도 올림픽 때 라이따이한을 초청하자는 이야기가 참전 용사들 간에 의견이 상정 되었는데 다른 참전 용사들 일부가 거부권을 행사해서 무산되었다고 한다.  월남전에서 만난 여인과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을 재 회동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사실상 평온이 살고 있는 한국 가정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조처라고 하였다.

요즘 베트남과 한국 사이에 한류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는 수출 비용이 비싸기로 유명한데 베트남에서는 비싼 드라마를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 수입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무료로 배급하여 주기로 하였다.
그 대신 삼성전자, 엘지전자, 포스코 광고 3편을 해당 드라마 방영 전 베트남 방송에서 광고해주기로 하여 요즘 한국 드라마를 베트남에서 방송하고 있는데 인기가 절정 이라한다.
그 드라마의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베트남이 공산화 되고 난후 얼마동안 외국 영화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정부에서 엄격하게 규제를 하였고 외화를 보다가 걸리면 벌금이 부과되었다. 12시 이후에는 사복 경찰을 배치하여 단속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베트남과 관련된 영화는  “ 하늘과 땅 ”. “굿모닝 베트남(로빈 윌리암스) ” 인도차이나", "  we war soldier/메리깁슨 “, ” 트라이앵글“, ”씨클로“ , ”연인/제이마치“ 등은 모두 사이공 강, 메콩 강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로빈 윌리암스 (ROBIN WILLIAMS)주연의  ‘ 굿모닝  베트남 ’ 줄거리 는 이렇다.

1965년 베트남 전쟁 당시 사이공에 있는 미군 라디오 방송국 의 DJ 로 한사나이가 부임해 온다.
방송 첫날, 새로운 DJ 에드리안 크로너는 정훈 장교로부터 갖가지 방송 중 규제사항 과 주의 사항을 지시 받는다.
당시 군방송 DJ의 멘트와 방송되는 음악과 노래는 모두 군당국의 감시 하에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 상황으로 기계적으로 건조한 멘트를 내뱉는 DJ 검열을 통과한 뉴스, 날씨와 건강 정보 흘러간 옛노래들로 가득찬 베트남 미군 방송의 라디오 프로는 병사들에게 조차 외면 당하고 있다.
그러나 에드리안이 절규하듯 외치는  ‘굿모닝 베트~~남 ’ 이라는 경쾌한 오프닝 멘트를 시작으로 유머스러한 멘트와 금지곡을 포함한 신나는 음악만을 방송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애드리안의 방송은 모든 군인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며 최고의 청취율을 기록한다.
베트남에 와서 처음 사귀게 된 청년이 베트콩인 것이 알려지고 그 청년이 자기가 자주 가는 술집에 플라스틱 폭탄 테러를 가한다. 또 다른 베트남 처녀를 알게 되어 처녀와 가까워지기 위하여 영어 교사를 자청하는데 그의 유머스러운 강의 기법은 곧 생활영어 강의법으로
좋은 교육 효과를 거둔다.
그렇지만 그의 파격적인 방송과 돌출 행동은 군상부의 반발을 사게 되고 사귄 청년이 베트콩으로 발각되면서부터 그의 방송과 베트남 아가씨와의 이별을 고하고 본국으로 송환된다.

타미리 존스, 조안첸, 히엡티레 “하늘과땅“ 줄거리를 살펴보면
원작소설은 레리 헤이슬립, 제이워츠의 "WHEN HEAVEN AND EARTH CHANGED PLACES" 레리 헤이슬립, 제임스 헤이슬립의 “CHILD OF WAR , WOMAN OF PEACE"이며
워너브라더스사 제공 / 협찬 리젠시엔터프라이즈, FP 스튜디오 카날 + 알콜필름 익스틀란/ 뉴 리젠시/토드- 아오/태
프로덕션 올리버 스톤 / 필름  “하늘과 땅” 타미리 존스, 조안첸, GPALDS. 노어, 히엡 티 레  / 편집  데이비드 브렌너, 샐리 멘키 제작디자인 빅터 켐프스터
촬영감독 로버드 리차드슨, A.S.C. /작곡 기타 공동제작 클레이튼 타운젠트
제작지휘 마리오 카사르 제작 올리버 스톤, 아논 밀찬,로버트클라인 , A. 키드만 호 / 각색 올리버스톤 으로 본 영화가 제작되었다.

“ 레리가 사는 베트남 중부의 마을 키라 는 화강암 봉우리가 드문드문 솟아 목가적 풍경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도시이다. 하지만 식민제국 프랑스군대가 떠나자 곧이어 베트콩이 도착하는데 베트콩 도착 이후 모든 것은 영원히 변해버린다.
두 오빠는 공산당에 가입하여 가족의 곁을 떠나고 그녀는 자신을 흠모하던 한 공산 당원에게 강간당한다.
중부의 소란을 피해 사이공으로 흘러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부유한 가정의 집안일을 돌보는 일을 하지만 곧 쫓겨난다.
그 이유는 그녀가 주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된 것이다.
집에서 쫓겨나 다낭의 사창가에 있는 언니와 생활하던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보지만 이젠 그들과 더 이상 함께 살수가 없음을 느끼고 사이공으로 돌아온다.
사이공에서 만난 미군 중사와 그는 다시 인연을 맺게 되고  아이까지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다가 베트콩의 공격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남편과 일순간 헤어지나 다시 만나게 된다. 이후 레리는 남편의 귀국으로 미국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남편과 이혼한다. 그러나  이혼즉시 남편은 자살을 택하고 생활력 강한 레리는 많은 재산을 모아 베트남으로 귀국하여 사이공에서 만난 사장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사장에게 대면시키고 베트남에 남은 가족과 재회하며 가족 살림살이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자유 국가의 문화와 사상에 익숙해진 레리의 사상이 베트남 사상과 맞지를 않고 다시 레리는 미국에 돌아와 생활하며 이후 미국에서 사회 봉사활동을 많이 하며 일생을 보냈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줄거리이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전쟁당시의 베트남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데 “굿 모닝 베트남”은  작자의 소설적인 줄거리를 영화화 하였으나 “하늘과 땅”은 실존 인물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이 오직 베트남을 배경으로 제작되었지만 시청하고 난후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베트남의 낭만적 풍경을 사진에서 많이 접해본 지역이  리조트가 발전되어 있는 곳으로서  판티엣 리조트와 나트랑의 빈폴 리조트 , 헌트 등은 개인적으로 휴식을 취하러가는 휴양지로서 적격이라고 한다.

  “베트콩“이라는 언어는 한국에서 와전된 것인데 당시 “껀저”라고 하는 원숭이 섬이 있었다.  이 섬의 망그로브 숲이 사이공에 산소를 공급하는 숲으로 아름답고 공기가 맑은 곳이었다. 이 껀저에서 “ 비엣 공산” 이라는 조직이 결성되었는데  한국에 이언어가 들어오면서 “베트콩”으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껀저는 베트남 전에 고엽제가 살포되기 전에는  아름다운 망그로브 숲이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에 미군이  엄청나게 살포한 고엽제로 모두 말라 폐허가 되어있는 망그로브 숲의 사진이 전쟁 박물관에 걸려 있었다.
미군이 고엽제를 이곳에 뿌린 이유는 미로처럼 얽힌 망그로브 숲 사이의 수로를 따라 신출귀몰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베트콩들과 전쟁을 치루기 위해 미군이 선택한 것은 사람에겐 피해가 없고 식물만 죽인다는 에이전트 오렌지, 화이트, 블루라고 담긴 용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 고엽제를 살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고엽제에 식물만 죽은 게 아니라 사람도 함께 병들었고  남부 베트남 16% 이상의 지역에  뿌려진 고엽제 는 그 양이 7200만 리터에 달한다 한다.
고엽제뿐만 아니라 1300만 톤의 각종 폭탄이 남부베트남에 투하되었는데, 그 화력은 히로시마에 사용한 원자폭탄 450배에 달한다고 하였다.
이는 인도차이나반도에 살고 있는 어린이 1명당 265kg의 폭탄세례를 받은 셈이며 껀저우전쟁 박물관에서  당시의 고엽제로 말라 죽은 사진을 보는 순간 모든 대지의 죽음 마음의 탈색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 강점기 당시의 월맹군은 우리나라의 김구 선생이 이끈 광복군 수준의 역할이었다. 고 한다. 이후 북베트남군, 월맹군, 베트콩 이 모두 정규군으로 흡수 되었다고 한다.

어느 한국의 중학생 2명이 온몸에 식초 냄새를 풍기면서 거지 형상으로 베트남 사이공으로 들어 왔다. 그들은 중국-태국-라오스-씨엠립-하롱베이-사이공으로 배낭여행을 하였다 그런데 그 애들 목에 영어로 코팅한 아버지 의 인사말이 걸려 있었다 한다.

그 인사말은 “ 우리 애들이 세계문화 체험을 하기위해 지금 귀국에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 애들에게 위급한 사항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겼을 때는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래 연락처로 연락을 주시면 꼭 보답하겠습니다.”

요즘은 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체험 교육으로 혼자서 여행을 하게 하는 것이 간혹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외국에 단둘이 여행시키는 것은 부모로서 매우 어려운 결단으로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것은 내 자신부터 본받아야 할 사항으로  차후 나의 자식들에게 외국 여행을 하게끔 해서  견문을 넓혀 우리 한국 실정과  비교하여  살아가는데 지표를 삼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는 곧 사이공 중심가의 한국인이 경영하는 “ 한강” 이라는 식당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베트남 종업원 아가씨 3명이 서빙을 들고 있었다. 곧 한식 메뉴로 김치찌개 된장국 이 나와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윤봉수 씨가 아가씨들에게 팁을 1달러씩 주었다.
식사를 마친 후 대만인이 경영하는 쇼핑센터에 쇼핑을 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선물용 넥타이와 바나나 오일 ,과자 등을 구입했다. 대만인들은 상술이 유명해서 바가지를 씌우는데 전문이라 나는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가격을 30% 다운해서 구입했다.

차는 곧 호치민 탄손얏트 (탄선넛)공항으로 이동하였다. / 제 5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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