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섭하이.~~ 제5편(“섭섭하이”는 캄보디아 어로 안녕하십니까? )
# 제2일/ 11월 25일
우리 일행은 곧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이 공항에서도 카메라 다리를 기내 탁송으로 하라는 승무원의 안내가 있어서 기내 탁송 수속으로 처리하였다. 비행기 테러이후 보안에 신경 쓰는 모습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VIETNAM AIRLINES 823 기는 사천 공항에서 서울 간을 운항하는 비행기 규모로서 탑승객이 거의 한국 사람들이었다. 기내 서비스는 빵 한 조각, 초콜릿, 물1컵이 서비스 되었다.

한 시간 정도의 운항으로 곧 캄보디아 씨엠립에 입국하였다. 입국게이트에서 지중해 여행사 이 사장은 우리 일행 여권을 별도로 제출해서 우리는 아주 쉽게 입국 할 수 있었다.

다른 일행의 여행객들은  시간이 꽤 걸려 입국을 하였다.  나중에 호텔에 돌아와서 이사장이 그 내용을 이야기해서 알게 되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직업을 얻는데 2년에 5만 불을 내야 직업을 얻을 수 있으며 5년 내에 5만 불로 산 자리 본전을 뽑아야 된다나 !

우리 일행은 급행료를 일인당 2불씩을 내어 빠르게 무사통과 하였다.  그래도 이사장은 이곳을 자주 가이드로 와 출입국 관리와는 구면이라 봐줘서 씨엠립 공항을 통과하는 급행료가 2불로 D/C 됐다고 하는데 이런 사항과 관계없이 모르는 사람들은 스탬프 찍는데  5불을 내야 한다고 한다.
한국의 출입국 관리 공무원이 이런 짓을 하였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게이트를 빠져 나오니 하늘이 코발트색 바다같이 깊이 보인다. 이곳은 공기가 오염이 되지 않아 하늘이 맑다.
버스는 아세아 미니버스로서 중고로 한국에서 수입된 차이다.
캄보디아 로컬가이드 미스터 “꽁” 은 캄보디아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인텔리 라고 한다. 교육 환경이 열악한 캄보디아에서 고등학교 까지 졸업했다면 많이 배운 사람이다.

꽁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  ” 반갑습니다. “   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운전기사 “윙 은 나보다 한살적다 그런데도 할아버지 같이 늙었는데  웃는 모습이 과히 ” 살인미소“ 다.
차를 내릴 때나 오를 때도 변함없이  살인미소를 짓는다. 이 살인 미소는 하노이에서 무뚝뚝한 운전기사와 대조적이어서 하롱베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회자 되었다.

캄보디아 가이드는 이승호 대리였는데 총각이고 키가 훤칠하게 크고 미남이며 아주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
캄보디아 씨엠립 기후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선선하여 잘못하면 감기에 들기가 쉬운 기후 다. 잠시 캄보디아 역사에 대하여 살펴보자.

  캄보디아( Kingdom of Cambodia)는 동남아시아 중부 인도차이나반도 남동부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캄보디아왕국이다. 현재 입헌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1세기에 크메르족, 즉 캄보디아 족이 건국한 동남아시아에서는 최초의 나라(푸난;扶南)이다.
그 뒤 몇 차례의 성쇠는 있었지만 메콩삼각주를 중심으로 해상 교역 국으로 번성하였고, 인도문화를 받아들여 크메르문자를 만드는 등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특히 9세기 초 자야바르만 2세가 브라만교에 의한 신권정치(神權政治)를 펴서 웅대한 석조건축을 남기는 등 앙코르문화의 기초를 쌓았다.
그러나 13~14세기에 이르러 동쪽에 있는 베트남과 서쪽에 있는 타이가 강해지면서 그 압력에 눌려 1431년 수도 앙코르마저 포기하게 되었다.
그 뒤 가까스로 존속하고 있었으나 19세기로 접어들자 유럽인이 진출하여 1863년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고 87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연방의 일원이 되었으며 제 2 차세계대전중에는 일본군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그 동안 군주제도는 그대로 계속되었으나 1941년 왕위에 오른 N. 시아누크가 47년 왕국헌법을 발포함으로서 입헌군주국을 발족시켰다.
49년 프랑스연합 내의 일국으로서 한정적으로 독립하였다가 53년 완전 독립하여 54년 제네바협정에서 자주독립의 중립국적 지위를 확립하였다. 독립한 뒤에 4개의 정부가 들어섰다.
  첫 번째는 시아누크의 캄보디아왕국으로서 1970년까지 이어졌다. 뒤이어 시아누크의 외유 중에 쿠데타를 일으켜 1200년간이나 지속되었던 군주제도를 쓰러뜨린 론놀이 스스로 대통령이 되어 캄보디아공화국을 세웠다(1970~75).
그러나 시아누크는 망명지 베이징[北京(북경)]에 머무르면서 캄보디아민족통일전선을 조직하였다.
  베트남 전쟁 중 중국이 캄보디아민족통일전선을, 미국이 론 놀 정권을 도와 내전으로 이어졌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뒤 미국이 원조를 중단하자 통일전선측이 우세하게 되어 75년 4월 론 놀 정권은 쓰러졌으나 내전이 끝난 뒤 76년 4월 캄보디아공산당서기장 폴포트의 민주캄보디아정부(폴포트정권)가 발족되었다. 그러나 폴포트정권은 농업을 기본으로 한 원시공산주의에 바탕을 두는 경제정책의 실패, 반대자에 대한대량숙청, 베트남과의 국경분쟁 등 많은 문제를 일으켰으며 약 2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캄보디아인이 학살이나 가혹한 노동으로 죽는 <킬링필드>사태가 벌어졌다.

그 때문에 78년 12월 베트남의 도움을 받은 캄보디아 구국민족통일전선이 결성되어 베트남군과 함께 수도프놈펜 등 여러 도시를 점령하였고 79년 10월 헹삼린의장을 수반으로 하는 캄보디아 인민공화국(헹삼린정권)이 발족하였다.

한편 프놈펜에서 쫓겨난 폴포트 정권은 국내 각지에 분산하여 게릴라활동으로 들어갔다.
민주캄보디아정부는 그 뒤 우여곡절을 거쳐 82년 7월 손산 전총리가 이끄는 반공민족세력인 크메르 인민민족해방전선(KPNLE) 및 시아누크파와 민주캄보디아연합정부(대통령은 시아누크)를 수립하였다.

  82년 7월부터 베트남군의 부분철수가 시작되어 89년 9월 완전 철수하였다.
90년 9월 내전당사자 4파가 신정부수립까지 최고국민평의회(SNC)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고 91년 7월 파리평화협정에 조인, 베트남군 침공 이래 13년간 끌어온 내전이 부분적으로 종결되었다.

93년 9월 신헌법이 발포되고 시아누크국왕이 즉위, 입헌군주제가 부활하였다.
96년 8월 크메르 루주의 제 2 인자 이엥 사리의 투항과 99년 3월 지도자 타목 등의 체포로 크메르 루주는 사실상 궤멸하였다.

<킬링필드>의 주역인 크메르 루주 지도자 폴포트는 98년 벤 부근 산악지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98년에 출범한 훈센총리는 2000년 2월 시아누크국왕 사후에도 입헌군주제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2년 2월 최초로 캄보디아 지방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캄보디아인민당이 승리하였다.

현재 52세 된 아들이 왕위를 계승 하고 있는데 약간 혼란스럽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75년 4월 19일부터 79년 1월까지 캄보디아는 공산주의 통치 기반으로 되어 있었다.

캄보디아는 크메르인이 95% 나머지는 화교들이 분포하고 있으며 캄보디아 글자는  크메르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크메르어는 산스크리트어와 스리랑카어가 합쳐져 만들어 진 글자라고 하는데 글자 생긴 모양을 내가 봐도 해득이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 산간 지역으로 가면 간판이 치과는 이빨만 그려져 있고 자동차 수리소는 벤치 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문맹들에게 쉽게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놓았다고 한다.

  77년에는 문맹률이 10%밖에 안 되었으나  폴포트 시대에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교육을 폐지시켜 그 영향이 크다고 한다.  
국토의 면적은 181040Km2 한국 국토의 1.8배 크며, 인구는 2003년 기준  1천 3백5십만 명이다. 그중 50%는 미성년자이다. 그것은 킬링필드 때 200만이 성인 남자들이 대량 학살당한 영향이다.

이곳은 전기료가 매우 비싸다. 그리고 정전이 자주 발생한다. 저녁에 압사라 춤 공연  때도 전기가 나가서 잠시 캄캄한 때가 있었다. 전기를 야간에 태국에서 밀수해서 사용 한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물에 석회질 성분이 많아 함부로 물을 먹을 수 없다. 전화료는 엄청나게 비싸서 전화를 국외에 한번 걸었다 하면 5만원정도의 통화료가 나온다. 9 번을 누르면 누른 그때부터 전화료가 계산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면  캄보디아에서는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이승호 대리로부터 캄보디아 현재의 상황을 잠시 안내 받는 사이에 아세아 미니버스는 호텔 에 도착했다. 호텔은 외장은 그렇게 화려 하지 않았으나 내장은 모두 티크 나무로 장식되어 나무의 빛깔이 목조 주택 내부에 있는 것처럼 색감이 아주 고급스러웠다. 모두 캄보디아 밀림지대에서 생산된 나무로 실내 장식한 것이라서 시공비는 적게 든 것으로 추측되었다.

호텔의 이름은 GOLDIANA ANGKOR HOTEL (Siem Reap)(TEL: 063-760-805)이다. 룸 체크인 시에 가방을 확인해본결과 이장명 형님의 가방이 공항에서 출입국 심사대에 놓고 온 것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가이드와 장명 형님은 가방을 찾으러 가기로 하고 우선  룸 체크인을 한 후 일행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물을 갈아먹은 탓인지 아내는 배가 아프다며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기 시작 했다. 기분 나쁜 복부의 통증이었다. 내일은 앙코르왓 주변 유적을  걸어서 탐사 한다는데 걱정이 되었다.

오늘 저녁에는 식사와 함께하는 “압사라 춤”를 감상하는 일정이 있어 6시 30분에 로비에서 집결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1시간30여 분정도 남았다. 아내는 피로해서 쓰러져 잠이 들고 나는 사워를 한 후 가방의 짐을 정리했다.

직원들에게 선물할 바나나 오일과 과자가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걱정이다. 설상가상으로 가방을 잠그는 열쇠를 가지고 오지 않아 가방을 잘못 다루면 가방 문이 열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래서 선물 일부는 비닐 백에 넣어서 가지고 가야 할듯하다.
호텔 TV는  한국 아리랑 방송이 나왔는데 장동건, 채시라, 손숙 씨가 나오는 드라마를 방송하는 중 이었다. 그러나 영상은 나왔으나 음성이 나오지 않는다. 엉망이다.
룸 인테리어 및 가구가 모두 티크 원목으로 장식되었다.  엘리베이터 내부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 나라의 풍부한 산림 자원의 상태를 짐작케 했다.

압사라 춤 공연장에 도착해 보니 많은 한국 사람들이 먼저 와서 식사를 뷔페식으로 배정 받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공연장 맨 앞쪽에 좌석을 배치하여 식사를 받으러 이층 뷔페식당으로 올라갔는데 이곳은 특이 하게도 날것으로 되어있는 생선, 육류 야채를 직접 먹고 싶은 음식을 적당하게 그릇에 담아가면 그것을 옹기그릇에  넣어 불에 달구어 익혀서 그릇에 담아주었다.

이 요리는 국물이 시원해서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가려서 먹을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뜨끈뜨끈 한 국물을 뱃속에 집어넣어서 그런지 배의 통증이 좀 가라앉았다.
이어서 압사라 춤의 공연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미희가 등장해서 손발의 관절을 최대한 꺾어서 천천히 춤을 춘다. 즉 느리게 동작하면서 유연하게 춤을 추는 것이다.

캄보디아에 오면 "압사라'라는 단어가 많이 있다. 우리말로는 천사라는 말인데 “춤추는 여신” , “ 천상의 무희”를 뜻한다. “압사라”는 “앙코르왓“과 함께 캄보디아인의 자부심이다. 원래 압사라 춤을 추는 무희들은 천상의 존재를 표현하는 역할을 맡은 신성한 임무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어, 왕실에서 함께 살았으며, 결혼은 금지되었다고 한다.

이 춤의 문화는 크메르 문화의 전성기였던 12세기에 만개하였으며, 인도 힌두교의 전설에 뿌리를 둔 고유 신화를 까다로운 격식의 몸동작으로 발전시켰다한다. 지난해 9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28호로 지정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그 사는 방법이 비슷해서  압사라 춤의 일부도 청춘 남여의 애정의 표현을 다룬 것으로서 각 파트마다 그룹으로 남여 무희, 어린아이들 무용수와 함께 춤을 추어  어우러진 춤사위는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느낌이었다.

날씨는 무덥고 실내는 에어컨이 있었으나 워낙 실내 면적보다 에어컨 효용면적보다 넓어서 무덥지 근 하였다. 얼굴에 땀을 훔치고 있으니 아내가 보기에 딱했던지 아이스크림과 팥 빙수를 가져와 맛도 별로 없는 빙과류를 먹었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압사라 춤의 공연도 끝나고 바깥에 나오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식당에서 제공하는 우산을 쓰고 아세아 미니버스에 승차했는데 버스 중간 천정에 비가 새어 떨어져 버스 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였다. 그래도 살인미소는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다.

아세아 미니버스 생산 공장은  한국에서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캄보디아에서 이 버스를 수입할 적에 버스 몸통 중간을 자르고 각종 중요 부품은 모두 분해 해체하여 고물로 수입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차를 그대로 수입하면 엄청난 관세가 부과되어 중고차를 비싸게 사게 되니까 고물 값으로 수입하여 캄보디아에서 다시 조립 한다고 한다.

캄보디아 역시 필리핀과 같아서 두들겨 맞춰 만드는 데는 도사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60년~ 70년대에는 미제 엔진에 드럼통을 펴서 만든 시발택시 , 새나라 자동차를 만든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의 캄보디아 시절이 당시 우리나라 의 그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가이드에게 주문한 정로환을 먹고  잠을 청했는데 배가 아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김해 장유 휴게소에서 사가지고 온 중국제 라디오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리니 올드 팝송이 음질이 좋은 상태의  FM 방송으로  잡혀져 흘러나왔다.

MC 언어는 캄보디아 언어라도 노래는 내가 알고 있는 팝송들이라서 듣기가 좋다  라디오를 듣다가 한참 만에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 들었다.  2004/11/25 다음 편에 계속
* 거제포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1-29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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