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섭하이.~~ 제6편

조회 수 6537 추천 수 0 2005.11.29 11:33:11


섭섭하이.~~ 제6편(“섭섭하이.는 캄보디아 어로 안녕하십니까? )
# 제3일/ 11월 26일
모닝콜은 5시, 6시부터 식사시간, 출발은 7시이다.
밤새도록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해서 숙면을 취하지 못하니 몸이 피곤하였다. 호텔에서 아내 와 흰죽으로만 식사를 마치고 대기된 아세아 미니버스를 타고 앙코르와트로 출발하였다.
살인미소 운전사 “윙”은 오늘아침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가이드 이승호 대리는 몇 개의 캄보디아 언어를 가르쳐 주었다.
“섭섭하이” ~ 안녕하십니까?
“옷끈이”~ 감사합니다.
“떡”~ 물(水)
“섭섭하이” 란 단어가  안녕하십니까? 라는 말에 일행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씨엠립 도로 아스팔트는 일본이 원조하여 포장을 하였고, 교통 신호대는 독일에서 원조 하였다. 승용차는 번호판이 없다. 자치주에서는 번호판이 필요 없으므로 경찰차도 번호판이 없다.
아침부터 이승호 대리의 여담이 시작되었다.
교통사고가 났다. 경찰차가 교통사고 조사하러 와서 사고를 낸 사람이 50불을 경찰에게 주었다. 경찰이 가해자에게 말하기를 “집에 가서 계십시오.” 라고 친절히 지시(?)했다.
잠시 후 경찰로부터  전화가 온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합의금을 낮추어 준다. ^(^
50달러 합의금을 피해자가 요청하였는데 경찰이 중재(?)를 해서 가해자에게 친절하게 30 달러로 낮춰준다.
경찰 역시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고 하니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 걱정이다.
캄보디아도 베트남처럼 프랑스가 89년간이나 지배해서 그 문화 영향으로 주 5일제를 시행하며 4월15일 설날 전후 3일, 일주일을 휴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왕의 생일날 5일 공휴일, 왕자 생일날 2일 공휴일, 왕자가 20명 정도가 있는데 법적으로 인정하는 왕자는 4명이다. 그래서 3일에 하루 휴일인 셈이다. 연휴가 100일 이며 하루에 낮잠 자는 시간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이다 참으로 많이 노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중국에서 캄보디아를  “ 나국” 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 나국” 이란 “먹고 노는 나라” 라는 뜻이다.  
덥다 보니 사람들의 성격이 낙천적이다. 관공서에 서류를 발급받으려면 반드시 오전에 일찍 가야 된다. 그래야 서류를 생각한 시간 내에 발급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경제는 화교들이 거의 장악하고 있다.
802년 자이나바르나(Jayavraman) 2세가 스스로를 神王으로 칭하고 앙코르 왕조를 열어 1431년 샴의 침략으로 쇠퇴할 때까지  크메르 민족의 전성기를 구가 하였다. 이때의 왕은 베트남 남부, 라오스, 미얀마 , 태국 일부를 포함하여 대제국을 형성하였고, 앙코르왓과 수많은 사원과 뛰어난 관개시설 등 세계적 문화유산을 남겼다.
자이나 바르나 7세 왕은 870년 전 캄보디아를 통치하면서  무료병원을 107개나 지어서 의료수혜 혜택을 국민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에는 인구 250,000명당 의사 1명꼴로 의료시설이 열악하여 병이 나면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앙코르왓을 구경하려면 입장 티켓을 구입해야 되는데 1명당 20달러이다. 그런데 이 티켓을 분실하면 벌금을 40달러를 주고 다시 20달러 티켓을 구입하여야 한다. 그래서 가이드는 개인분실을 우려하여 앙코르 티켓을 구입하여  배부하지 않고 자기가 보관하면서 우리를 입장 시켰다.
입장료 부분에도 엄청난 벌칙이다.
캄보디아 이 나라는 머리가 아프면 파스를 붙인다고 한다. 파스를 붙이면 두통이 낫는다고생각 해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앙코르와트 티켓 팅을 마치고 아세아 미니버스는 먼저 앙코르 톰 남문 입구부터 갔다.
인도 문화의 영향 탓인지 타지마할 돔형 건축 방식으로 조각된 사면불 미륵불의 얼굴이 통로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데 홍토석을 물에 반죽하면 굳어져 이것을 시멘트 재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처음 보는 앙코르 톰의 입구는 해자를 가로 지르는 출입교에 양쪽에 일렬로 늘어선 각 54개의 거대한 인물상 나가들을 끌어당기며 앉아있는 모습은 뱀 몸통을 잡고 당기는 모습의 석조로 된 조각상들이 줄지어 있는 입구로서 오른쪽은 악의 신 왼쪽은 선한 신의 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입구 주변에는 코끼리를 타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주변의 연못에는 연꽃이 간간이 피어있었고 하늘은 금방 어두워졌다가 곧 파란하늘로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오전에는 날씨가 흐리더니 오후로 다가갈수록 날씨가 좋아졌다
이곳에서 일행들의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용선씨와 아내 기념사진을 악의 신 앞에서 한 커트 씩 촬영하고 걸어서 중앙통로 입구를 통과하여 반대편 돔형 조각상을 바라보니 머리가 세 개 달린 코끼리 아이바라타 가 거대한 모습으로 세월의 연륜을 느끼게 하는 모습으로 턱 버티어 서있다.
앙코르라는 지명은 당초에는 로쿠로라는 지명이었다고 한다. 로쿠로는 도성 즉 도읍지라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앙코르가 “다루꼿” 이라는데  이 뜻은 “ 뱀이 많은 “ 이라는 뜻이다.
그 로쿠로가 앙코르로 바뀌었다고 한다.
앙코르(Angkor)는 ‘도읍’이라는 뜻이고 와트(Wat)은 태국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므로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읍’ 이라는 뜻이 된다.
앙코르 유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고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인도에서 기원전 1000년 에서 기원후 2세기에 이르기까지 원주민 브라만 민족과 새로 이주한 아리아 민족 사이의 전쟁을 주제로 하고 여기에 인도 신화를 곁들인 18장 10만 행의 시구. 문자는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으며 몇 사람의 승려가 수세기 동안에 쓴 것이라 한다.
그 중에서 유해교란(乳海攪亂)에 대해 살펴보면 아득한 옛날 제석천이 자재천의 불신인 위대한 성자를 화나게  했기 때문에 위대한 성자는 여러 신에게 주술을 걸었다. 신의 힘이 약해지자 나쁜 악마인 아수라가 날뛰기 시작하여 신들이 비슈누에게 상의하자 악마들과 화해하고 그 동안 영원히 죽지 않을 영약을 만들기로 하였다.
약을 만들기 위해 강력한 약초를 바다에 던져 놓고 휘젓는 막대기로는 만다라 산을, 끌어당기는 밧줄로는 큰 뱀인 바스키를 택하였다.
  신들은 꼬리 쪽을, 악마들은 머리 쪽을 잡고, 비슈누 신은 분신의 술수로 거대한 자라가 되어 바닷속에서 빙빙 도는 축이 되었다. 신들이 끌고 악마들이 끌면 휘저은 상태가 되나 악마들의 수가 많아 균형을 유지하는 비슈누 신을 돕기 위해 라마신의 편인 원숭이 왕 하누만이 원숭이를 데려와 신의 편에 서게 된다.
빙글빙글 도는 큰 자라 때문에 바다는 밑바닥까지 일대 요동을 일으키고 물고기들은 우왕좌왕 난리를 친다.
  그동안 저어진 바다에서 아름다운 공주와 아프사라스(춤추는 하늘의 선녀)가 태어나고 라크슈미(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가  만발한 연꽃을 타고 탄생했다.
  여신의 뒤를 이어 여러 동물이 태어나고 마지막으로 죽지 않는 약인 아무리타가 바다에서 솟아올라 항아리에 받자마자 악마가 빼앗아 도망쳤다. 비슈누신이 영약의 항아리를 되찾아 신들에게 주어 악마들을 지옥으로  쫓아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앙코르 톰 남문의 출입교는 마치 '유해교란'의 이야기를 보는 듯 하다. 앙코르 톰은 위대한 도읍이라는 뜻이다.
바이욘 사원부터 갔다. 성벽에는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크메르 왕가의 역사나 궁정생활, 이웃 나라와의 싸움, 사냥, 낚시질, 건축 광경, 레슬링, 서커스  닭싸움 등 일상생활의 모습에서부터 전설속의 이야기들이  너무나 자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이욘 사원의 회랑에 새겨져 있는 조각 그림들 중 , 코끼리를 타고 신하들이 든 몇 개의 파라솔 밑에서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왕, 씩씩한 병사들, 일상생활을 하는 백성들, 그리고 힌두교, 불교 승려들의 모습, 말을 탄 왕 자야바르만7세의 모습, 수염에 족두리를 쓴 중국사람, 중국 사람들의 상거래, 전쟁에 나가려하는 남편 몸보신 시켜 주려고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 크메르인의 학교모습, 장난치는 학생, 춤추는 압사라 여신상 , 신으로부터 선물 받은 자야바르만 왕의 칼, 베트남 참족모습, 크메르인모습, 선수를 치료하는 모습, 산부인과 모습, 등 조각품의 귀를 크게 조각한 모습들은 당시의 불교 영향으로 인한 것이며 탑을 모두 쌓아서 조각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조각되어 있는 돌들은 60km  떨어진 프놈바켕 석산에서 돌을 운반하였으며 조각이 잘 되는 사암으로 된 돌이다.
  바이욘 사원은 돌의 규격이 모두 다르며, 지그재그로 쌓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밀착한  건축기법으로 오랜 기간 동안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바이욘 사원은 자비로운 관세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부처의  <바이욘 사원의 관음상 사면불>얼굴을 새긴 탑을 사방에 거느린 중앙 금자탑의 높이는 땅에서 무려 45미터. 중앙 금자탑 주변에는 부처의 얼굴을 하나씩 새긴 여덟 개의 작은 탑이 별들처럼 둘러싸고 다시 그 주위를 40개의 사면불탑이 피라미드형으로 솟아 있다. 49개의 탑(처음에는 53개의 탑이었다고 전해짐)에 새겨진 부처의 얼굴은 200개에 가깝다.
옅은 미소를 띄고 있는 부처, 명상을 하는 듯한 부처, 환한 미소를 짓는 부처등 이 관음상들은 각기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거대한 불상들의 모습에 탄성이 날 뿐이다.
  당시 캄보디아 문화는 흰두교와 불교의 이미지가 합쳐져서 최종적으로는 불교문화로 전향 되었는데 사원의 조각 벽화는 당시 조각한 사람의 상상력으로 조각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문화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1850~1860년대 세계 고고학계는 고대 문명의 발견에 열의를 보이고 있었고, 동양에서 발견된 이 유적지는 서양인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으며, 프랑스 식민지 하에서 프랑스는 하노이에 프랑스 동양 학원을 만들어 앙코르와트의 유적 발굴과 보존, 연구에 힘을 기울인다. 1907년 프랑스가 관리하다가 캄보디아로 반환 되었다.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Ⅶ)때  1177년 왕이 수도를 비운 사이 베트남 참족의 침공으로 수도 앙코르가 함락되고, 약탈되었다, 당시의 황태자인 자야바르만 7세는 4년 뒤 변경지방에서 즉위한 후, 적극적인 공략과 태국과의 전략적인 제휴로 참족을 몰아내고  수도를 탈환했다.
   왕은 수도 탈환 후 크메르 왕국 전반에 새로운 활기를 넣고자 참족이 파괴한 바푸온 사원을 중심으로 새 도시인 '앙코르 톰'을 건설했으며, 타프롬, 프레아칸, 반데크다이 등 수많은 사원을 세웠다. 특히 크메르 왕조 역사상 자야바르만 7세가 주목되는 것은 선대왕과는 달리 대승불교를 받아들여 자기 자신을 관세음보살과 같이 생각하여, 크메르 문명의 정수 '바이욘'사원을 세운 점이다.
그러나 대규모 공사로 인해 그가 죽고 난 후 크메르 왕조는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1432년 태국 시안족이 캄보디아를 침입하여 수도를 프놈펜으로 천도하였다. 그 이후 앙코르왓은 350년간 정글에 묻혔다. 그 이후 이 유적은 1850년 경 비유브오 신부에 의해  발견되었다가 1861년 앙리무어(프랑스의 발굴학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바이온 사원은 사원 내 길이 복잡하여 잘못하면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다고 가이드가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나와 일행들 몇몇이서 길이 엇갈려 가이드가 찾으러 나섰다, 방여사도 길을 잠시 잃고 우리 일행과 헤어져 박 소장이 걱정스럽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가이드가 방여사를 찾아 일행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바푸온 사원으로 이동 하였다.
바푸온 사원은 바이욘 사원의 북서쪽으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1962년부터  현재까지 공사 중이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고 출입교를 지나서 제일 가까이 보이는 곳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높이 솟은 피라미드형의 사원은 앙코르 와트나, 바이욘처럼 똑같이 수미산을 형상화 시켜 놓은 것이라 한다.
바푸온 사원은 옆의 바이욘 사원보다 200년 정도 앞선, 우다야디야바르만 2세에 의해서 만들어진 곳으로 힌두교 파괴의 신 시바 신을 모시던 곳이라 한다.
현재까지도 복원공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모든 사원 조각품을 분해해서 분해한 조각돌에 번호를 매겨 다시 매긴 번호대로 조립하려는 방법으로 복원공사를 하고자 복원할 부분을 해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킬링필드가 일어났고 국가가 혼란스러워져서 이 해체된 조각품들이 그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아무렇게 나 뒹굴고 있었다. 안타까운 현실이었으며 세계적인 문화유산 복원작업이 아쉬움이 많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문화유산을 방치 해 놓지 않았을 것이다.
해체되어있는 조각돌에서 바푸온 사원을 바라보며 가이드의 설명을 계속 들었다.
이 복원 공사를 프랑스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가시적으로 진척된 부분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복원공사를 빨리 마치면 직장이 없어져서 실업자가 되고 프랑스에서 원조되어오는 자금도 끊기게 되므로 일부러 공사를 천천히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지만 현재의 캄보디아 국가의 경제적 입장으로 보아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쩐 일인지 ...........
섭섭하이.~~ 제7편 에 계속

옥순룡 프로필

현)거제시 민원지적과장
현)거제 계룡사진동우회장
현)거제시청 사진동우회장
현)거제시청 테니스클럽회장
현)신현동인회 특우회장
   한국사진작가협회 거제지부 초대 총무간사
   거제테니스클럽2003-2004 회장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사진싸이트/ 거제포토갤러리운영자(http://www.geojephoto.com)

* 거제포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1-29 21:52)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