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섭하이.~~ 제7편

조회 수 6883 추천 수 0 2006.01.17 11:43:43


섭섭하이.~~ 제7편(“섭섭하이.는 캄보디아 어로 안녕하십니까? )
# 제3일/ 11월 26일
현재 캄보디아에서는 왕자가 26명인데 유네스코에서 인정하는 왕자는 8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앙코르왓의 유적에 대한 문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원나라의 사신이었던 주달관(周達觀)의 기록에 의하면
“왕궁은 긴 베란다와 회랑이 사통팔달로 통해져 있었고 황금에 의해 치장되어 있었다.”
“왕은 공식 접견을 할 때 2층 높이의 창문에서 아래층 접견실을 굽어보았고 신하나 외국
사절들은 그 밑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왕은 왕국을 위해 여자로 변신한 머리 아홉 달린 뱀과 황금 탑에서 매일 성교를 한다는 소문이 있다
“왕이 코끼리를 타고 왕궁 밖으로 행차하면 백성들은 대단한 충성심을 보였다."
1296년부터 1297년 4월까지 앙코르 왕국을 방문한 중국 원나라의 사신 주달관은 `진랍 풍토기'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왕이 살던 곳은 어디였었고  황금 탑은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이내 그 궁금증은 해소 되었다.
그곳은 바로 앙코르 톰 안에 있는 왕궁이었고 황금 탑은 왕궁 안에 있는 피메아나카스 사원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고 한다.
현재의 왕궁 터와 피메아나카스 사원 그리고 코끼리 테라스는 같이 붙어 있다시피 한데 세워진 시기는 모두 다르며 피메아나카스 사원은 라젠드라바르만(944-968) 왕 때 세워졌고, 왕궁은 자야바르만 5세(968-1001) 때 만들어졌다. 그리고 코끼리 테라스는 위대한 도시 앙코르 톰을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서 12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코끼리 테라스는 왕궁과 피메아나카스 사원의 동쪽 끝에 있는데 350미터나 이어진 긴 연단 밑에는 사실적인 코끼리 부조들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이 테라스(연단)위에서 왕은 백성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고 병사들과 코끼리, 말을 탄 기병들과 전차들을 사열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터만 남아 있는데 아마도 세워진 건물들은 목조였기 때문에 사라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화려하고 웅장했던 왕궁과 황금 탑이 세워져 있던 피메아나카스 사원과 웅장한 코끼리 테라스를 거닐며 그 옛날 장엄했던 앙코르 왕국을 연상하면 그 상상은  별로 어렵지 않게 상상의 왕국을 백투더 퓨쳐 할수 있을 것이다.
동쪽문은 깔라신(식욕의 신) 이 시바 신에게 자신의 몸을 먹히고 얼굴만 남아있는 조각을 보았다 우리나라에도 양반 댁 문고리에 부착되어 있는 신 문고리에 붙어 있는 조각품 이  같은 성격의 신이라고 한다.

따게오 사원이 건축된 시기는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초반( 자야바르만5세-수리야바르만 1세) 때인데  이 사원은 아직 까지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건축을 하다가 그만둔 이유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몽고의 침입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만일 이 사원이 완공되었더라면 어쩌면 앙코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원은 22m 높이로 솟아 권력을 상징하듯 위풍당당해 보인다. 이곳은 전체를 사암으로 지은 사원으로는 첫 번 째로, 위엄이 있다. 다른 사원처럼 복잡한 조각이 없어서 선이 굵어, 보는 이를 시원하게 한다. 사원의 규모나 미적 완성도와는 달리 방문하는 사람이 적어 사원의 정적 속에서 장엄한 기운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따게오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3층에만 5개의 탑들이 있고, 그 탑들의 생김새도 복잡하게 조각된 것이 아니라 사암으로 굵직굵직하게 지어져서 단순미가 돋보인다. 3층은 사각형의 대지에 5개의 탑이 중앙에 서 있는 구조이다. 역시 5개의 탑은 메루산을 뜻하며 기초 단의 조각이 매우 돋보인다. 담벽은 2개인데, 중앙에 입구 탑이 서있다. 동쪽 입구 탑의 벽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금석문이 있다.
기초인 1, 2층에서 1층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2층은 담이 없고 3층까지 가파르게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3층에서 아래를 보면, 보는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주는 곳이다. 또한 기단이 그리 넓지 않아 바로 나타나는 숲들과 어우러져 넓은 평원의 높은 산에 오른 듯한 느낌을 주어 매우 시원해 보인다.
외벽의 중앙에 있는 입구에는 가운데에 중앙 탑을 하나 세웠고, 세 방향으로 통로가 나있다. 동쪽 담의 각 좌우에는 긴 방이 있어서 방문객들의 휴식을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던 같은데, 입구는 기둥을 세운 현관으로 되어있다.
두 번째 테라스는 기초 주변을 장식하였고, 회랑으로 싸여서 내부 쪽으로 창문이 나 있다. 동쪽에는 2개의 긴 방이 있는데, 이 역시 휴게실로 보이며, 두개의 도서관이 서쪽을 보고 서 있다.
따 프롬사원으로 이동했다. 이사원은 12세기 중반-13세기 초, 자야바르만 7세 때 세워진 사원으로서 입구가 서쪽으로 되어 있어 사원을 둘러보고는 동쪽으로 나간다.
아침에 오면 정글의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실제 우리 일행이 방문한 시간이 정오가 다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 키가 큰 고목 아름드리나무 뿌리가 사원을 휘감고 있는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사원 이름은 '브라흐마의 조상'이라는 뜻으로, 아버지를 위해 쁘리아 칸을 지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란다.
따프롬 사원은 통행로만 만들어 놓고 다른 것은 전혀 복구를 하지 않은 사원이다.
세월은 무구한 흐름과 연하여 자연이 어떻게 해서 사원을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들을 그대로 방문객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일부러 복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이 사원을 관광하였을 때 사원을 처음 탐험한 사람들처럼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풍광도  많이 남아 있었다.
열대 무화과나무들과 가지로부터 뿌리가 내려와 땅에 박힌 보리수나무 등이 어떻게 사원을 덮을 수 있었고, 이 나무들이 무너지면 사원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실제 현장에서 보고 상상 할 수 있었다.
  자연의 생명력 앞에는 무기력해지는 인간의 힘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돌에 새겨진 법어의 기록이 아직도 선명해 이 사원의 역사를 말해준다. 따쁘롬 사원에는 당시 3,140개의 마을을 통치하였고 79,365명이 이 사원을 관리하였는데, 18명의 고승과 2,740명의 관리들과 2,202명의 인부들과 615명의 무희들, 260개의 신상과 39개의 첨탑들 이 있었거나 남아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원에 남아 있는 재산 중에는 500Kg이 넘는 황금 접시 한 쌍과 35개의 다이아몬드, 40,620개의 진주, 4,540개의 보석, 876개의 중국에서 온 커튼, 512개의 비단 침대 그리고 523개의 양산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숫자가 비록 왕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과장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앙코르 유적지 중에서 제법 큰 사원에 속하는 따쁘롬 사원의 중요성과 의미를 잘 말해주고 있다.
    따 프롬은 연속된 긴 낮은 건물들이 한 층에 있었으며, 보통 사각형의 라테라이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규모는 600*1,000m 라고하며 지금은 담 벽의 흔적만 남아 있다.
사원의 중심은 통로로 연결되는 연속된 탑들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배치는 사원의 심장부로 가는 길을 성스럽고 엄숙한 길로 표현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엄숙한 분위기는 건축물의 배치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진 무너진 폐허에서 더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원들은 배치가 대칭이므로 한쪽만 보면 다른 쪽은 무엇이 있는지 대충 알 수 있고, 시간이 없으면 그냥 나올 수도 있지만, 이 사원은 사원 전체가 보리수나무나 탄야 나무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서 구석구석을 보아야 그런 폐허의 장관들을 목격할 수 있다.
문 하나만 지나면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입구 탑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곳에서 사원 주변을 둘러보니 역사의 흔적과 유구한 세월이 말없이 흘러간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상이용사 악단이 아리랑을 연주 한다고 한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아리랑 연주가 끝나면 1달러씩 팁을 주라고 가이드가 말했다.
이곳에 있는 뱅골 보리수나무는 점액질이 많이 나와서 주로 배 밑 방수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장미목인 곡기(흑단의 나무)는 단단하다고 한다. 나무 자체에 독성이 나와서 벌레가 먹을 수 없다고 한다.
흑단장미 오리지널 원목으로 제작한 장롱은 한국에서 7~ 8천정도 가격이 나간다고 한다.
이 나무는 너무 무거워서 장롱으로 만들면 사람이 손으로 들 수 없다고 하며 비싼 가격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장롱 전면만 이 나무를 사용한다고 한다.

따쁘롬 사원 입구 에 벼락 맞은 나무가 있었는데 벼락 맞아 부서진 나무 그 위에 또 다른 나무가 뿌리 내려 있었고, 영화 “룸레이드”  촬영장으로 사용된 이곳 나무를 보니 신기하였다.
이곳에서 일행의 단체사진과 부부끼리 기념 촬영을 재빠르게 하였다. 우리 일행 뒤를 많은 관광객들이 따라와서 잠시 지체하여 사진을 여유 있게 촬영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뒤에 촬영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촬영 포인트에서 일행들의 부부 기념촬영을 끝내니 등허리가 아프고 얼굴에는 식은땀이  쭉쭉 흘렀다.
무거운 펜탁스645n  카메라를 다행이 윤봉수님이 좀 들어 주어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패키지 관광 여행이 아니라면 천천히 구도를 생각하여 촬영하면 괜찮은 작품이 나올법한데 가이드는 일행을 재촉하고 그리고 일행들도 빠르게 쉬지 않고 걸어서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촬영할수 있는 기회는 좀체 만들어지지 않아 촬영을 포기하였고 디지털 카메라를 주로 촬영을 하고  팬탁스 645n 카메라는 이따금 중요하게 생각되는 풍경을 겨우 한 커트씩 촬영할 수 있는 여유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이드에게 셔터를 눌러주라고 부탁한  사진은 아예 컴컴하게 노출 부족으로 되어 사진을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앙코르의 유적 하이라이트인 앙코르왓을 보기로 하고 식당에 이동하였다.
이곳의 현지 식은 어제 저녁과 같이 비슷한 뷔페식이다. 식당의 이름은 “차오프라야” 식당이다. “ 차오프라야” 라는 지명은 태국의 강 이름이다. 에어컨은 작아서 냉방 기능의 효율이 적어 식당 안은 무덥고 미쾌한 음식 냄새로 상당이 불쾌하다.
멧돼지 고기를 양념한 요리가 맛이 있어 보여 몇 점을 먹었다. 속은 여전히 불쾌한데 무덥고 땀을 많이 흘려 아내가 팥빙수와 아이스크림을 가져 왔는데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 복통을 일으켜 고생을 할 줄이야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식사 후 캄보디아 보석 가게에 쇼핑을 가기로 했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보석은 루비,  다음은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황금, 순이라고 한다. 일본인 관광객은 사파이어를 좋아 한다고 한다.
보석 가격은 국내보다 좀 싼 것 같았으나 보석 세공이 뭔가 모르게 부실한 것 같았다.
여인네들은 보석 구경하기에 정신이 없었고 남자들의 일행은 무더위에 지쳐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쇼파에 기대어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이윽고 쇼핑이 끝나고 살인미소의 아세아 미니버스는 앙코르와트로 달렸다.
캄보디아 훈세 수상은 1167년경 청 홍제가 쓴 수나라, 당나라 치제가 기록된 책 “홍제 수필” , “박정희 회고록 ” , 박정희 소장의 절대 권력 지향 등이 담긴 책을 많이 읽으며 79년 1월부터 현재까지 수상을 재직해서 25년간이나 수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수상은 권력 유지 차원에서 충성시험을 하며 측근들에게 충성 경쟁을 시키기도 하고
실제 98년 내전에 충성 시험을 하였다고한다.
  캄보디아 경찰청장이  어떻게 하면 수상의 눈에 들까? (충성심의 발로)를 궁리하던 끝에 연구하다 못해  캄보디아 제1야당 총재 나나리뜨 왕자가 국회하원의원 의장으로 있을 때 총재 관저에 박격포를 쏴 내전이 발발 하였다고한다.
정당마다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국회에서 발언을 혹 잘못하면 탱크를 가지고 나온다고 한다. 항상 내전 발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가 캄보디아라고 한다.
프놈펜에서 발행하는 신문에서 한국 비방 기사가 보도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따쁘롬 사원에서 한국 여자 누드사진을 촬영 했는데 그 당시 당사자는 벌금을 물고 풀려났으나 유네스코와 캄보디아가 신성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에서 누드 촬영을 하였다고  공식적으로 한국을 비방 하였다고한다.
태국의 가수가 캄보디아를 비방한 일이 있었다.
캄보디아의 모든 물자를 태국에서 공급하여 무역을 하고 있는데 , 캄보디아 훈세 수상은 태국 탁신 수상에게 공식적으로 사과 요청을 받아 내기위해 태국 국경을 폐쇄했다.
그리고 캄보디아 국내의 태국 식당 , 대사관이 불에 탔다. 그 이후 태국에서는 캄보디아  태국 대사관건물 시가 3배 정도의 금액으로 보상해주고 사과 수락을 받아내었다고 한다. 이처럼 캄보디아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어떤 경우에는 잔인한점이 베트남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시작하려 면은  도로 포장을 3km 정도 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캄보디아 1평(1 수피아멘트)의 면적은 가로 x 세로 = 1m 이다.
씨엠립 6번 국도는 캄보디아를 가로지르는 국도이다. 이 곳에 숙권이라는 지명의 마을이 있는데 정부에서 자갈로 도로 포장을 해 놓으면 야밤에 주민들이 깔아놓은 도로의 자갈을 모두 걷어 모아 놓는다. 그러면 새벽에 트럭이 와서 이 자갈을 주민들로부터 사간다고 한다. 그 사간 자갈을 정부에서 다시 사 길에 깐다고 한다. 이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이다.
2006년부터는 일본이 앙코르 유적 복원에 손대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일본이 관리 한다는 뜻이다. 씨엠립를 도오쿄오 처럼 건설하겠다고 한다.  일본이 복원해서 유적을 관리하며 입장료는 일본에서 손대지 않고 캄보디아에게 돌려준다는 이야기이다. 결론적으로 복원 공사를 시행하면 앞으로 앙코르와트 유적 관광은 사실상 어렵게 된다.
그래서 앙코르와트를 관광하고 싶은 분들은 하루 속히 앙코르에 여행을 해서 구경하라고 권하고 싶다. 일본이 관리하면 조각 벽화를 가까이에서 보지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고 한다.
현재 동남아 전체 일에  일본이 많이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경제 식민지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 했을 때도 시스틴 성당의 “천지 창조” 복원 작업을 일본에서 하였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작품을 망쳐 놨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생각 같았으면 그냥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일본이 손을 대서 색상이 화려해 지기는 했지만 억지로 만들어 붙인 것처럼 어색한 복원이 보기에 불쾌하였다.
그리로 그 복원 댓가로 무선 이어폰으로 자국민의 언어로 유적 소개 안내 방송를 해주도록한 조처가 자기 나라로서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로 여겨질지 모르나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돈으로 자국민의 언어 방송을  관광 해설 부분에 샀다고 여겨져 언짢은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었는데  이젠 캄보디아에도 손을 뻗힌다니 우선 일본의 침략근성의 본질적 성격에 대하여  걱정이 마음이 앞선다.
우리나라도 삼성 그룹에서 앙코르와트 유적 복원 협상을 했다는데 무산되었다고 한다....  
/섭섭하이.  ~~ 제8편으로 계속
* 거제포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1-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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