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짜오~~~ 제10편(하노이-하롱베이)

조회 수 11556 추천 수 0 2006.02.15 09:30:12


신짜오~~~ 제10편(하노이-하롱베이)
# 제4일/ 11월 27일

대나무 악기가 음질이 이렇게 좋은지 처음 알았다. 우리나라 대표곡인 아리랑 연주로 마지막 공연을 마쳤는데 마치고 나니 공연료를 받는 모자가 돌려져서 1달러씩 공연료를 주었다.
연주하는 악사들과 같이 아리랑을 연주할 적에는 모두 함께 무대에 나가서 춤을 추기도 하고 악사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는데 그 악사들이 미소를 띄며 포즈를 잘 취해 주어 기억에 남는 기념이 되기도 했다.

이곳 관광을 마치고 종가집 이라는 한국인이 하는 식당에 점심 식사를 했다.
모두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으로 하는 식사라 맛이 새롭다고 한다. 이곳에도 베트남 현지 아가씨들이 서빙을 들고 있었는데 눈치가 빠르다. 덩치도 자그마하고 인물도 예쁘다. 한국 병사들이 베트남에 와서 왜 ! 라이 따이한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갈듯하다.
식사 후 윤 사장이 이들2명에게 1달러씩 팁을 주었다.
그런데 식사 후 식당을 나서는 우리 일행들에게 주인이라는 사람은 신문을 보며 인사도 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식사를 해도 “ 안녕히 가십시오. “ 하고 주인이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인데 국외에서 만난 자국민을 주인이라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신문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하롱베이 가면서 차안에서 옥삼수 회장은 “국내 식당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하물며 이역만리에서 한국 사람들 보고 반가워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인데“ 하며 흥분하여 가이드보고 다음 한국 관광객을 가이드 할 때에는 그 식당을 이용하지 말라는 엄명이 내려 졌다.
그런 말을 그 사장은 들을 만도 했다.

식사 후 우리 일행은 하노이에서 장사를 하는 한국인 가게에 쇼핑을 했다. 이제 쇼핑은 마지막이어서 선물 살 것은 이곳에서 마무리해야한다.
낙하산 천으로 만든 키플링 가방은 부인들이 모두 한개 씩 사고 싶어 했다. 가격은 그렇게 싼 편은 아니었지만 국내 가격과 비교해보니 개당 3-4만원 정도의 차이로 가격이 낮았다. 디자인과 바느질 상태도 좋아 보였으나 다양한 디자인의 상품들이 준비 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 까지 는 160km 로서 버스로 3시간30분 정도 소요 된다고 한다. 도로사정은 정말 열악하다. 편도 1차선으로 차와 자전거와 사람과 우마차가 차선도 없이 흘러가는데 버스가 이리저리 곡예 운전을 하며 비켜 다닌다.
시간이 많이 소요 될 것 같다.
도로명이 큰길에는 붙어 있다 “ 독립운동로” 금마로“ 등 건물 번호도 각 건물마다 붙어있다. 사이공이나 하노이나 도로 건물명 제도는 프랑스 강점기 아래 시행한제도로 잘되어 있다.
하노이 근교의 건물 형태는 모두 이층집들이 주류를 이룬다. 건축물 상태를 보니 20년~ 30년 정도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건물의 구조를 보니 1층은 거의 장사를 하는 가게로 되어 있고 그 가게 안쪽에 내부 계단이 있어서  2층으로 올라가며 외부 계단은 보이지 않는다.
도로와 접해 있는 가로는 좁고 세로는 길게 바닥면적 45평 정도의 2층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집들이 모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왜 그렇게 집을 지었느냐고 가이드에게 물어 보았더니 베트남의 토지가 퇴적층이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 붕괴위험이 있어서 붕괴를 막기 위해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건물의 도색은 전면만 칠을 하고 측면은 그대로 두는데 그것은 다음사람이 집을 지을 때 연결해서 집을 짓기 때문에 도색을 할 필요가 없고 창도 측면으로 내지 않는다고 한다.
기초는 파일을 박아 그 위에 흙을 메우고 기초를 하고  기둥은 철근4개정도를 박아 황토와 연화 벽돌을 쌓아 건축을 한다고 한다.
욕실, 화장실, 문화는 프랑스 강점기에 프랑스 문화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토지소유권은 국유이지만 건물은 저당, 상속, 매매가 가능하다고 한다. 베트남의 도로 포장율은 8~ 9%정도 된다고 한다.
집집마다 오토바이는 일상 활동 운송수단이며 오토바이가 가정에 가장 비싼 필수적인 생활품이고 가구, 소파, 는 반드시 비치한다. 이곳은 습도가 높기 때문에 실내 벽은 페인트 칠만하고 바닥은 타일을 깔며, 창문에는 반드시 보안 자바라 철망 그리고 대문에는 반드시 철문을 달아 붙였다. 그 이유는 도둑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의 경제는 장롱경제라고  필자가 기 전언한바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렵게 번 돈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으며 은행에 맡겨 놓으면 보관료(세금)를 받으니 집안에 금고를 사서 그곳에 현금이나 귀금속을 보관한다. 1분을 집밖으로 나와도 반드시 대문을 잠그고 외출한다고 한다.

사이공에서는 전혀 산을 볼 수가 없었는데 북쪽 하롱베이에 다가갈수록 중국의  계림 산수처럼 생긴 앙증맞게 생긴 나지막한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베트남 어느 고산지대에서 사는 노인이 평생을 벌어서 번 돈으로 치아를 모두 금니로 해 넣었다. 그래서 치아가 모두 금이다.  세상을 뜰 때 치아를 상속해 주는데 큰아들은 어금니 둘째아들은 작은이, 딸도 그다음 사랑니를 상속 시켜 줬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의 치아는 석회 성분의 물을 많이 섭취해서 회색이다. 물이 좋지 않아 차를 많이 마셔 체내의 불순물을 걸러 준다고 한다.
물, 등 생활환경이 좋지 않아  평균 수명이 60세를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운전하는 사람의 소득 수준은 아주 좋다고 한다. 버스 운행하는 운전기사 Tip 이 소득만큼 차지한다. 비싼 물가를 어떻게 유지하느냐? 그것은 집안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돈을 저축해 놓아서 가능하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돈을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단 자식에게만은 돈을 잘 쓴다. 농사는 우리나라의 50년대 수준으로서 두 사람이 물 퍼서 물소로 논을 갈아 농사를 짓고 경제 성장률은 12%이다.  

하노이 국립 대는 순위가 세계100대 대학에 들어가는데 졸업정원제이다. 입학하고 나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졸업을 하는데 우리나라하고는 정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베트남의 외국인 기업체 복지 그리고 급여 근무조건 한달 임금은 200달러정도 이며 우리 한국 돈으로 24만원 정도이다.

올해 8월 달에 베트남에서 아시아나 항공을 항로 승인을 하여 인천 - 하노이 직항, 그리고  대한항공 인천 - 하롱베이 노선을 열었다.
아시아나 항공 여승무원을 베트남 아가씨로 뽑았는데 20명 모집에 4,000명이 응시 했다고 한다. 임금도 파격적이어서 초봉 1000달러(120만원)였다.
그래서 장관 집 딸들, 별 달린 집안 아가씨들은 모두 응시했다고 하며 사실상 아시아나 항공에서 미스 베트남을 뽑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이들의 시험 과목은 미모, 외국어 구사 능력, 친절도 등으로 배점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한국의 여승무원들은 엄청 친절하기로 세계에서 인정해준다고 하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롱베이에 갈수록 지표면에서 석탄을 채굴하는 장면이 보인다. 이곳의 석탄광산은 지표면에서 채굴을 하니 지하에 있는 우리한국의 탄광처럼 사고 발생이 없다.
야트막한 야산이 중국 계림 리강 주변의 산수 같은데 그 산을 발파작업을 해서 돌을 캐내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명승지로 지정이 충분히 될 수 있을 만큼 아름답고 옹기종기한 산들의 경관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경제가 어려워서 그 아름다운 산수를 화약으로 발파 작업을 해서 없애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환경문제가 거론될 시기가 오면 그때의 풍경들이 그리워  질 때가 올 것이다. 아쉬운 광경이다.
베트남은 커피 생산국 세계2위라고 한다. 우리나라 동서 커피는 베트남에서 커피를 전량수입해서 가공해서 상품을 만든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원두 가루에 물을 바로 타서 마시기 때문에 커피가 매우 쓰다.
  베트남의 지하자원은 풍부하다. 소련 붕괴로 인한 원조 감소 등으로 현재 외자 유치에 힘쓰고 있으며 산유국으로서 원유와 석회암 수출로 수출국2위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기업 국내 유치에 많은 힘을 기우리고 있다고 한다.
LG에서 석유 시추건을 따려고 노력했으나 어려웠다고 한다.  유조선이 한번 뜨면 60억원이라는 거액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원유를 현지에서 판매한다. 베트남은 원유를 뽑아서 각국에 보내 정제하여 다시 역수입해서 사용한다. 가솔린 1ℓ 당 550원 ~ 600원 정도이다. 베트남 국내에 정유 공장이 없기 때문에 휘발유값이 비싸다.
쌀 수출국으로서는 세계2위이다.
한국내의 요즘 슈퍼마켓에서 나오는 떡이 중국에서 만들어져 마지막 항공으로 화물로 부쳐져 국내공항에 새벽에 도착하여 도착 즉시 전국 곳곳에 택배로 뿌려진다고 한다.
한 치 , 쥐포, 멸치, 등도 베트남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안남미 는 ton 당 43달러 약 5만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한식으로 운영하는 한국식당은 한국에서 찹쌀을 가져와 베트남 안남미와 섞어서 밥을 한다. 그래야 밥이 찰 져서 맛있다 그리고 고추장, 된장만 한국에서 가져와 이곳의 채소로 김치 등 모든 반찬을 만드는데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은 토질이 좋아서 비료가 필요 없다고 하는데 어느 기업에서 비료공장을 베트남에 설립해서  사업에 실패했다고 한다.
포항 제철은 91년도에 베트남에 진출하여 사업을 하고 있고, 토목은 일본이 철강은 한국과 합작해서 하고 있다고 한다.
버스는 계속해서 많이 달렸다. 일행들은 피곤한지 차만 타면 잠을 잔다. 내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고생을 한 탓인지 잠깐 피로가 몰려와 한 시간 정도 숙면에 취하였다.
흑송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흑송은 베트남에 자생하는 소나무로서 나무의 키가 쭉쭉 뻗었다.
나무의 모양세가 목재로 사용될 수 있는 적격인 나무로 성장하고 있었다. 사이공 강하단부 에 자생하는 망그로브 나무는 정화 능력이 뛰어난 수목으로서 사이공 강에서 흘러나오는 더러운 물을 정화해서 바다로 내어 보낸다고 한다.
하롱베이 에 가까워오자 바다 가까이 새우 양식장도 눈에 보인다. 새우는 머리 쪽이 생식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느 한국인이 하롱베이에 관광을 왔다. 이 사람은 홀아비인데 저녁을 먹고 바람을 쐬러 호텔 바깥으로 나왔다.  때 마침 쎄마(혼다)걸 즉 혼다걸이 유혹을 해왔다.
혼다걸은 매춘행위를 하는 여자라고 한다. 홀아비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는데 가까운 여관으로 혼다걸과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혼다걸이 잠깐 나갔다 온다면서 나가고 홀아비는 혼자 여관방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험악한 남자 3명이 방으로 들어와 옷을 홀랑 벗기고 지갑과 옷을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가이드에게 간신히 연락을 하여 옷을 모두 사 입고 귀국하였는데 친구들 간에 볼 면목이 없었다고 한다. ^^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잠깐의 실수로  일이 잘못 풀렸으면 새우 양식장에 팔려가 모진 노동으로 국제 미아가 될 뻔하였다고 한다. 그냥 우스개로 넘기지 못할 이야기다. 또 다른 한국인 중에서 이런 지경을 당하여 베트남 새우 양식장으로 팔려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겨우 겨우 돌아온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오늘 저녁 새우 양식장에 팔려가지 않으려면 혼다 걸 오토바이를 절대 타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데 어느 듯 SAIGONG HALONG 호텔 이 보였다.
외국에 나가면 특히 여자들을 조심해야 된다고.. 가이드의 말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SAIGONG HALONG 호텔 로비에 들어가니 좌측에 공연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남자 악사 1명과 여자 악사 2명이 우리일행과 또 다른 일행이 한국인이 투숙하는 것을 알고 아리랑 , 만남,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한국 가요를 베트남 악기로 연주 하였다.
그 무대 옆에는 베트남 기념품을 진열해서 팔고 있는 조그만 가게가 있었고 로비는 제법 넓어서 특급 호텔의 면모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호텔 룸 체크인후 저녁식사를 현지식으로 하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매번 가보는 식당이지만 한국 사람들만 주로 이용하게 하는 식당으로 한국 사람이 주류를 이루어 메뉴를 준비하는 곳이다.  준비한 음식은 메뉴가 별로 였다. 간단한 석식을 마치고 발마사지를 받는다고 한다. 버스는 호텔과 몇 발작 떨어진 발 맛사지 장소에 도착하였다.
여자는 남자가 남자는 여자가 맛사지를 해준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나 옆에는 방여사 박소장 이회장이 자리를 잡았는데 벌써 맛사지를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 남자아이가 들어 와서  손짓으로 바디 랭귀지를 한다. 즉 남자가 맛사지 해도 좋으냐고 묻는 것이다.
난 즉시 좋다고 싸인을 보냈다. 좋다고 ^^ ( 속으로 .... 참 ! 내 ! 덩치가 커서 맛사지 해줄  사람이 없는데 남자아이가 해주면 어떠랴 ! )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나이가 조금 든 듯한 미남형의 아이였다. 서투른 영어로 물어보니 하롱베이에서 축구 조기회 회장이라고 한다.
그러고는 내가 하는 운동이 뭐냐고 물어 본다. 난 테니스와 수영을 한다고 답해 주니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맛사지를 받고 있는데 이곳 발 맛사지 사장이 맛사지 실에 들어와 맛사지하는 현장을 둘러본다. 이 사장은 한국 사람이었는데 고향이 서울이라고 한다. 나이가 60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이 키가 작고 배가 적당히 나왔다. 발맛사지 하는 애들 관리가 문제라면서 나에게 애로를 토로하다가 다른 방으로 간다.
그런데 나 옆의 방여사는 발 맛사지가 간지러운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낸다. ^^
아이의 팔을 보니 근육이 생겨 운동도 좀 한 것 같다. 난 이 아이에게 시원하게 발 맛사지를 받았는데  애가 너무나 성의 있게 맛사지를 해주어 고마운 마음에 1달러를 팁으로 주었다.
호텔에 돌아와 김약국이 펑크를 낸 방에 고스톱 판이 열려 한참 관전하다가 취침하였다.
내일 아침은 바로 앞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유네스코 지정 하롱베이 3,000개의 섬을 관광 한다고 한다. 신짜오~~~ 제11편(하노이-하롱베이)에 계속
* 거제포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3-0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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