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짜오~~~ 제12편(마지막 편)

조회 수 6549 추천 수 0 2006.02.15 10:19:55


신짜오~~~ 제12편(마지막 편)
# 제6일/ 11월 29일

운전기사는 운행 중에 반대편 차선에서 운행하는 자기 회사나 동료의 버스가 지나가면 일일이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하여 준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버스 기사들끼리  지나치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중앙 분리대를 만들어 운전자간에 시야를 좁게 만들었고 도로가 고속화 되면서 운전자 간의 인사 나눔이 차츰 없어지는 것 같다.
한국 기업 삼한건설에서 시공 한 도로를 지나왔다.  우리나라 기업이 공사한 도로라서 그런지 도로 시공한 형태가 국내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한마디로 보기에 깔끔하고 편하다.
우리나라의 기업 시공 수준은 세계적이다. 자긍심이 들었다.
고속도로 주변에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붉은 벽돌로 짓는 건물은 RC 조 방식으로서 칸막이는 붉은 벽돌로 마무리 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공동주택과 아파트 시공은 정부에서 직접 관장 한다.

베트남에서 종교의 자유는 있다. 그러나 선교는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나이가 16세가 되면 주민등록이 나오는데 종교가 주민등록상에 찍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 등록을 만들 당시 종교가 없어 성인이 된 후  종교를 가지면 그때 주민등록에 종교를 등록하면 된다고 한다.
하노이 시는 호치민(사이공)시보다 도시계획에 문제가 있었다. 제일 급선무가 도로 개선이며 도시 기반 시설이 미약하여 앞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시민들이 불편하게 느낄 소지의 상황이 많이 내포된 그런 도시 인 것으로 파악 되었다.
베트남 그 광활한 토지, 풍부한 지하자원, 자연과 넉넉함에 전혀 바쁘게 생활하지 않는 여유로운 나라로서 좋은 이미지도 있지만 국민성이 부지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무한하게 개발이 되어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살수 있는 환경이 이미 구축되어 있는 나라로서 경제적으로 우리나라와 많은 교감을 나누어야 할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노이에 진입했다. 오늘은 베트남을 떠나는 날이다. 마지막으로 부인들이 키플링 가방 교환을 해야겠다며 쇼핑가게에 다시 한번 들렀고  쇼핑가게 이층에 있는 한식당에서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쳤다.
이곳의 사장님은 서울에서 베트남에 진출해서 식당을 하는 사람으로 첫인상이 좋고 친절해 사람이 후덕해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부인들이 피곤하다며 또 발 맛사지를 받자고 한다. 난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단체 생활이라서 할 수 없이 개인 부담으로 받기로 했다. 이곳도 역시 한국 사람이 사장으로서  발 맛사지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여자 애들이 맛사지를 했는데 성의 없이 건성으로 하는 바람에 돈만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발 맛사지를 마치고 나오니 아직도 시간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베트남 수상 인형극을 보러 버스로 이동하였다.
어지러운 오토바이 자전거 물결 그사이로 버스가 흘러가는데 이제 완전히 지쳤다. 처음에 본 오토바이 물결과 자전거 물결은 생소하여 잠깐 동안은 구경거리가 되었으나 이제는 오토바이 꽁무니에서 내어 뿜는 허연 연기 때문에 목이 칼칼하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스러운지 이제는 오토바이 물결만 보아도 스트레스가 콱콱 박힌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일행이 모두 다 그렇게 느껴진다고 한다. 어서 빨리 하노이 시를 떠나 귀국하고 싶다고 한다.
수상 인형극은 내용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행 상태가 매우 지루하게 느껴져 일행들은 초반에 잠시 감상을 하더니 30분쯤 지나서 모두 일어나 자리를 떴다.
수상 인형극장은 아파트와 주택 밀집지역과 인접해 있었는데 실내도 아니고 오픈된 공간의 공연장이어서 효과 음악소리, 멘트, 악기 연주등 음향이 앰프를 통해서 그대로 방송이 되었다.
시끄러워도 주택지의 시민들이 가만히 그대로 허용하는 것을 보니 이곳 시민들 마음이 엄청 너그러운 사람들만 모여 사는 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 생각하니 사회주의 국가에서 당에서 주도하여 운영하니 이런 경우도 허용될 수 있는 부분도 있겠다 싶어 아직도 시민을 위한 위민행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연장을 빠져나와 두어 걸음 걸어 나오니 시내 중앙길이다. 길옆에는 판자에 좌판을 만들어 커피와 차를 끓여서 파는 노인네가 있다.
그 옆에서 지나가는 오토바이 매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태평하게 차를 마시면서 담소하는 풍광도 보인다.
카메라로 한 컷 촬영해보았는데  노출이 맞지 않아 떨렸다. 그래도 자료 사진으로는 쓸만하다. 촬영하고 인사를 하니 노인네가 미소를 지으면서 답례를 한다.  

우리 일행들은 인천공항으로 입국하기위해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은 캄보디아 공항과는 너무 많이 달랐다. 이곳의 면세품 품목은 아주 다양 하여 상품구입을 본인 의사대로 구입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담배를 피웠다.  건강상 좋지 않다고 담배 끊기를 권유 했으나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 담배를 여태까지 피워서 오래 살수 있었는데 나이 80이 다되어 죽을 때가 다되었는데 지금 끊어서 뭐 할끼고! ” 하시는데 더 드릴 말씀이 없다.
어머니 선물로 니코틴이 적게 든 담배 한 세트와 직원들과 나누어 마실 큰 병에 든 조니워크 양주 1병을 구입하고 곧  VIETNAM AIRLINES VN 936 항공기에 탑승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탑승도 국제공항이면 게이트에서 바로 기내에 걸어서 탑승을 해야 하는데
버스로 이동하여 기내에 탑승를 하였다. 기 1편에 전언한바 있지만 베트남 항공기는 모두 기내 시설이 필수적인 사항을 제외하고 서비스 시설은 전무하다. 이륙하여 한 시간쯤 지나니 기내식이 나왔다. 기내식은 베트남 입국 때의 메뉴와  비슷하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기내식은 우리 입맛에 딱 맞아서 고급호텔에서 나오는 수준급이고 스튜디어스도 친절해서 나무랄 데가 없다. 기내 면세품은 안사주어서 사주라고 광고를 해서 탈인데 베트남 항공기는 아예 기내 면세점을 판매하려고 노력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베트남 항공기도 승무원 중에서 상품을 많이 판매하면 수당을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많이 팔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제도가 없는 모양이다. 표정도 무표정하고 일하는 모습이 억지로 할 수 없어서 하는 일처럼 적극성이 보이지 않는다.
인천 공항으로 귀국하는 비행시간은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필리핀 항공기보다 베트남 항공기가 더 편하다.  항공기의 성능도 좀 나은 것 같다.
외국을 다녀 보면 모두 다 느끼겠지만 우리나라만큼 물 좋고 산 좋고 농수산물 전자제품 교통 모든 부분이 풍족하게 있는 즉 살기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입국 신고를 마치고  대기된 버스는 거제로 곧  향했다.
월요일 아침이라서 그런지 교통이 혼잡하다. 그런데 버스기사가 지리를 잘 모르는지 헤매기   시작했다. 한 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대전 쪽으로 내려왔는가 생각하고 창밖을 내다보니 도심 한복판이다. 버스 기사 보고 이곳이 어디입니까? 하고 물어보니 관악구 신림동이라고 한다.
기가 막혔다. 판교 분기점 쪽으로 진입한다는 것이 버스 기사가 잘못 생각해서 뺑뺑 돌아가는 길을 택해 2시간여를 서울 도심에서 시간을 허비 하였다.
이왕에 시간은 이미 허비 하였고 거제에 도착 하는 것이 하루 일정이니  일행들이 아침이나 먹고 가자며 가까운 휴게소에 차를 파킹하라고 한다.
거제에 도착한 시간은 두시를 넘기고 있었다.
모두 헤어지기가 섭섭하였는지 총무가 한턱낸다고 하여 W회 식당에서 뒤풀이를 하기로 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기념사진 인화를 모두해서 월례회 때 나눠주었는데 단 한사람만 바쁜 일이 있어서 불참하였고 모두 참석하여 지나간 추억의 화제에 꽃을 피웠다.
이제는  더 늙어 힘 빠지기 전에  매년마다 외국 여행을 부인들이 적극적으로 가지고 한다. 여행 경비를 별도로 모아서 여행을 가게 해 달라고 부인들이 더 채근한다.
그래서 일년에 한번씩은 가까운 곳이라도 가기로 만장일치로 결정을 하였다.
부인회에서는 아내가 카메라를 능숙하게 다루기 때문에 아내가 촬영을 도맡아 하니 필수 촬영 요원으로서 여행에 꼭 데리고 다니기를 이구동성으로 원하기 때문에 이제는 카메라를 수동 45, 612 만 남겨 놓고 모두 이관 해야 할 것 같다.
아내는 금년에 진주 산업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주관한 사진학과를 수료 하였고 사진 영상 지도사 자격도 취득하였다.
그동안 란“ 스튜디오에서 영업 사진을 운영한 경력도  있고 이번에 평생 교육원에서 배운 사진촬영 강의가 많은 도움이 되어 실력이 향상 되었다.
그래서 스튜디오 촬영법은 오히려 내가 아내에게 배워야할 입장이 되었다.
어느 가이드가 “ 인생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것이라면 , 여행은 시원한 옹달샘에서 짐을 풀어 놓고 잠시 쉬어 가는 것이다. ” 라고 하였다.
나는 이 말에 정말 공감했다. 쉬지 않고 앞 만 보고 달려온 수많은 세월들 이제는 잠시 여행이란 시간의 쉬어가는 공간을 잠깐씩 마련하면서 자신의 인생 여정 뒤안길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져야 할 것이며,  미래의 인생 여정도 잠깐씩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되는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다. / 끝
{ 끝까지 읽어 주신 독자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 거제포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3-0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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