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미마쎙~ 제 2편

조회 수 7165 추천 수 0 2006.02.15 10:22:08
8_003.jpg

쓰미마쎙~ 제 2편 (감사합니다)
2005년 1월 8일

새벽에 기상하여 어제 저녁8층  옥상에서 한 노천탕 (월견초) 에 올라갔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모두 1층 사우나에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노천탕에 몸을 담구고 여명이 밝아오는 벳부의 항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어둠이 걷히더니 서서히 동쪽하늘에 불그스름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벳부의 항은 내항이라서 파도가 없어 여명은 조용히 바닷물에 태양이 꼬리를  드리운 채 하늘을 향해 솟는 광경이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광경이었다.
이렇게 황홀한 여명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카메라를 가지고 올 생각도 못한 터여서 아름다운 장면을 잡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잠시 후 중년의 사내가 욕조에 들어왔는데 머리 싸맨 폼이 정작 일본인이다. 그들은 아랫도리를 수건으로 가리고 조용히 들어와서 잠깐 욕조에 몸을 담구고 일찍 나가버렸다.
호텔 건물 꼭데기가 오픈된 8층 노천탕의 이름은 월견초(月見草) 즉 “달을 본다. ”라는 뜻을 가진 노천탕이름이다.
일출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  1층으로 내려와  사우나에 들어가 보니 친구들은 이제 막 샤워를 끝내고 있는 중이었다. 면도만 이곳에서 하고 샤워 후 바로 식당에 아내와 합류하여 식사를 시작하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음식이 먹을 만한 것이 없다. 흰죽과 삼치구이 계란찜으로 식사를 대충 마쳤다.
호텔을 출발할 때 일본인 종업원들은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우리 일행을 환송하였다.
웃는 얼굴로 환송하는 그들의 속마음은 모르겠으나 태극기를 손에 흔들며 배웅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환류 열풍과 한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벳부 온천지대의 관광객 맞이 친절운동이 잘되어있는 것 같았다.
우리 거제도에도 각 업소들이 친절 운동을 펼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호텔 내에서 우리 일행이 입은 의상은 “유가따“라는 의상인데 잠옷 대용으로 식사할 때나  차를 마실 때 입는 실내복이다. 온천지대에서는 각 여관 음식점마다 유가따를 비치하여 제공한다.
여름철에 기모노를 입을 적에는 안에 속옷을 입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에도 여탕 청소를  남자 직원이 태연이 들어와 청소를 하고 있으며 시골에서는 남여 혼탕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도 이제는 혼탕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일부 목욕탕은 수영복을 입고 중간에서 만나는 장소는 있다고 한다.
일본의 목욕탕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장소이며 오후 4시부터 12시까지 운영한다.
요시하라, 도쿄, 나가사키 벳부(別府)는 옛날 나라에서 공창을 열었다.  나가사키 (長崎)에 서양 문물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고 한다. 나가사끼에 인공 섬을 만들어 외국인 들은 이곳에서 거주하게 만들었다.
막부시대 지방 영주들을 교토에 와서 살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막부에서 영주들의 세력을 약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자비를 들여서 교토에 오게 만들어 그 이동하는 여비가 과도하게 소요되는데 영주들의 재력을 그 이동 경비로서 낭비하게 만듦으로서  영주의 세력을 약하게 만들었으며 이동 후  1년 동안 사무라이들과 살게 하였다.
그 당시에 성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공창 제도를 두었다.
일본의 고급 숙박 지는 여주인이 기모노 입고 무릎을 끊고 기다리고 있다가 손님이 오면 문을 열어 인사를 올리고 방을 안내 한다고 한다. 이곳은 손님에게 최상의 요리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며. 이곳의 숙박료는 1인당 약 25만원이라고 한다.

벳부의 풍경을 둘러보니 항을 중심으로 5층 이하의 나지막한 새로운 건물들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고 그 주변에는 단독 주택들이 밀집되어 산만하지 않은 도시계획으로 시가지  뒤에는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 처져 있는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경의 벳부항 이다.
군데군데 화산 연기와 수증기 기둥이 마치 우리나라의 저녁 무렵 군불 때는 굴뚝의  연기처럼 보인다.
  기모노는 여염집 아낙들은 무채색의 기모노를 입는다. 남자는 결혼식 때에는 검은색 양복에 흰 넥타이 장례식에는 검은색 넥타이에 검은색 양복을 입으며 기모노는 검은색 에 오비(허리벨트)는 흰색을 매는데 화려한 외출복이다.
검은색 벨트는 장례식에 참석할 때 만 맨다. 기모노는 우리나라 한복 입을 때처럼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입는다.
일본요정 ‘게이샤 ’즉 일본 전통식 술집은 우리나라에 비유한다면  옛 왕조정치시대에 있던  기생집 같은 수준이다. 전통적 봉오(춤)를 춘다. 다도 예절은  바이어 정치인, 사업가, 이들과 대화가 가능하고 예절을 갖춘 여성이라야 하므로 게이샤 교육을 철저히 시킨다.
1년은 “미이꼬“ 춤추는 게이샤 로 그 후는 게이샤가 된다. 게이샤를 손님들은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는데 부모들이 자기 자식이 게이샤가 되는 것은 반대한다고 한다.
게이샤의 일생은 대부분  재벌가 또는 정치인의 내연의 처로 살아간다고 한다. 우노 수상 도 내연의 처가 게이샤였는데 그것이 언론에 밝혀졌다.  언론에 밝혀지자 우노 수상은 일생을 같이 산 여자를 하루아침에 무관심하게 대하였다.  그것이 일본 여성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그 여론으로 인하여  결국 수상 직에서 물러났다.
일본의 성은 오사카성, 나고야성, 구마모토성, 화산은 아소 산 활화산 관광 ,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 되었다.
  일본인들은 통념적으로 복종하면서 살아간다. 일본의 고유의 신앙 신또 때문에 일본에서 기독교가 활발하게 퍼지지 못하였다. 예수교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고 유일신으로서 일본의 사-농-공-상 계급사회와 배치되는 신앙이었다.  
때문에 기독교인을 박해하여 예수 상을 발로 밟고 지나가고 신도들을  해지옥에 고문하고 탄압하였다.  그 원인으로 일본에서 교회의 건물을 보기가 힘들다.
일본가옥은 담이 없고 대문도 없다. 도둑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도둑에 대한 경계가 없다. 지금은 중국에서 마피아가 들어와 문제가 되고 있다.
야쿠자는 의리가 있고 선량한 사람은 손대지 않는 다고 한다.  고베 “ 야마구찌파”는 고베 지진 복구 봉사 활동을 지원하였으며  조식제공과 본부에 식수를 제공하였다. 지금은 야쿠자를 억제 하여 조직이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중국 야쿠자는 세계적으로 잔혹하다고 한다. 조직에 문제를 일으킨 조직원 손목을 절단한다고 한다. 중국 야쿠자가 후꾸오까 일가족 4명 살해한 중 국제적 사건이 한 달 전에 일어났다. 만주 대사변 대일 감정 때문에 중국이 일본을 미워한다. 중국에서 야쿠자 일당이 붙잡혀 1심에서 사형 당했다고 한다.
일본은 습기가 너무 많아 여름 식 집이 많다. 창문이 거의 주택을 차지한다. 여름에는 반드시 출근 전에 베란다에 이불을 내어 걸어 건조시킨다.
일본 사람들은 자택에 손님을 초청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습성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도둑맞는 것 중 여자의 속옷을 훔쳐 가는 것이 스트레스 해결 방법이라고 한다.
어느 변태 도둑은 여자 팬티를 4,000장 훔쳤다고 한다. 일주일분 여자 속옷을 도둑이 집안에 널어놓고 각각 향수를 뿌려 냄새를 맡는 변태 짓을 했다고 한다.
러브호텔 원조 교제 등의 어원은 일본에서 들어왔다.  속옷 입다가 파는 이상한 가게가 생기고 남여 성행위하는 장면을 훔쳐보는 가게도 생겼다고 한다.
“젖은 낙엽족 “어원은  회사에서 일만하고 아내를 관리하지 않던 남편이 퇴사 후에는 아내가 싫어해도 아내만 따라다닌다. 낙엽이 비에 젖어 빗자루질을 해도  물이 묻어 낙엽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하여 ”젖은 낙엽족“ 이라한다. 즉 능력을 상실한 남편이 아내에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말한다.
일본 사람들은 어떤 일에 그다지 좋지 않아도 좋다고 표현한다. 안 좋아도 일단 동조하고 다른 의견을 낸다. 우리처럼 즉각 다른 반대 의견을 내지 않는다.
요즘 한류열풍이 일본에도 불었다. 『대장금』 『겨울 연가』 『먼 길』 등 토요일 낮 위성방송에서 방영하는데 일본인들이 많이 시청한다고 한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김치 불고기와 비빔밥 체인점이 대도시에서 생겨 유행한다.   배용준은 “오로나민“ 이라는 박카스 종류의 건강음료 광고를 일본에서 하고 있다. 이 음료는 30대- 40대에서 선호한다.
롯데 아몬드 광고와 1편의 드라마 때문에 한류 열풍이 불었다.
한국의 때밀이 문화도 일본에서 유행이다. 일본 여성들이 계를 모아 단체 때밀이 관광을 하러 한국으로 온다고 한다.
  한국은 개개인의 힘이 강하고 일본은 단체의 힘이 강하다. 일본 사람은 줄을 잘 선다. 유럽사람 들은 일본사람 줄서는 것을 관광 한다고 한다. 줄서는 문화는 일본이 잘 발달하였다.
중국 사람은 못 기다리는 것 1위 그다음이 한국 사람들이라고 한다.
일본에는 대학 시험일 또는 11월 15일 전후 신사 참배를 많이 하는데 이때에는 기모노를 입고 머리에 꽃을 달고 신사를 참배하며 입시 합격 기원, 등 참배 시에 기념사진 촬영을 하기도 한다.
결혼식은 교회 식으로 하며, 초청된 사람만 참석한다.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하며 불교와 신토 복합 종교식으로 하는 나라이다.
“좋은 것은 모두 본받자”
일본은 좋은 것은 모두 본떠서  하는 문화이다. 서양의 문화 문물을 가져와 “혼”은 일본 것으로 하자. 싱크대, 욕조 는 서양의 것을 설치해도 방은 다다미로 하자. 즉 전통과 현재가 잘 지켜지는 나라이다.
일본의 즈효다꾸앙 스님이 사찰에서 자기가 고안해 만든 반찬 “다꾸앙“을 다꾸앙 스님의 이름으로 명칭을 부여했다.
요즘 우리가 중국집에서 먹는 다꾸앙은 일본 스님이 고안해서 만든 반찬이다. 일본 사람들은 청, 빈 검소함을 실천한 다꾸앙 스님을 생각하면서 다꾸앙을 먹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다꾸앙도 식당에서 추가로 주문 시에는 추가요금을 내야한다.
일본에서 음식값계산에는  1/n 철저하다. 교수와 함께 단합대회를 해도 전부 1/n 이다.
도요다 자동차 신차 발표회가 있었다.  초청된 사람들에게 1,000엔 하는 메밀국수 한 그릇을 대접 하면서 신차 발표회를 한다. 이때에는 직접 사장이 자동차 매매계약서 작성을 하면서 자동차를 판매한다.
도요다 회장이 메밀국수 한 그릇만으로 대접을 해도 참석한 귀빈들이 기꺼이 고맙게 생각하며 대접 받는 검소한 문화는 비록 일본이지만 우리가 본받아야할 문화인 것으로 생각된다.  
  도요다 자동차 판매 순위는 일본에서 1위 세계 2위이다. 나고야 시 옆에 도요타시가 있다. 자동차 산업으로 성공한 도요다 자동차 회사 이름을 따서 시 이름 도 바꿨다.

이정표를 보니 구마모토(態本) Kumamato 시 가 가까워 오고 있다. 차를 잠시 휴게소에 세워 쉬어가기로 하였다. 일본의 휴게소는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물건을 파는 가게가 들어서 있다.
가게안의 상품을 둘러보니 가격이 비싸다. 일본이라고 해서 좋은 상품만 진열되어 있다면 오산이다. 우리나라 상품보다 조잡한 것도 많이 눈에 띈다. 나는 조그마한 병에 일본 술이 들어있는 걸 구입했다.
일본은 상품 포장 단위가 작은데 이것은 핵가족 영향이라고 한다.
일본의 상술은 정말 기발 나다 고 한다. 라면 가게에서 유명한 옷을 입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피아노 렛슨 교습소 옆에 카꼬야께(문어 풀빵 가게)를 열어 피아노 레슨 받는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는 그 집에서 문어 풀빵을 사먹고 집에 한 봉지 사간다.
상호와 어울리지 않는 가게 이미지이지만 그렇게 운영하는 가게가 많이 있다.
이제 일본에도 불경기로 인하여  라면 가게 옷 공장 가게 등이  문을 많이 닫았다.
1970년대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팔았다. 는 일화가 있듯이 일본상인들은 상술이 좋다.
회전식 초밥집 유행한다. 그곳에서 싸게 사먹을 수 있다. 일일이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은 비싸다. 어느 초밥집 주인이 맥주 공장을 방문하여 그곳 컨베이어 벨트에 의한 자동화 시스템을 보고 느낀 점을 초밥집 가게에 적용하였다.  요리해서 벨트에 올려놓으면 빙글빙글 돌면서 손님이 자유스럽게 먹을 수 있도록 시설을 하였는데 지금 이  시스템이 크게 유행하여 프랑스 등 외국에서도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동 보관 방법을 연구하던 사람이 아내가 틔긴 음식(된뿌라)을 가져왔는데  된뿌라 유막은 음식 보관을 오래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밀가루 생면을 튀겨서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컵라면은 젓가락 사용이 서툰 사람이 훌훌 마시면서 먹기 좋게 만들었다.
  일본 가게는 친절하다. 눈만 마주쳐도 웃는다. “ 쓰미마쎙”은 사람 부를 때 와 선물 받을 때 사용 하는 언어이다.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마음가짐을 가지며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직선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옛날 무사들이 의견교환시 반대의견과 부정적 의견을 직접이야기하면 목이 날아가기 때문에 항상 이야기를 빙 빙 둘러서 습관적으로 이야기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있다.
장사꾼들은 정직하며 친절 근면하다. 환율계산 착오는 절대 없다. 그런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직한 것이 일본 상인들의 정신이다.
구마모토현은 일도 2부 43개현 중에 속하며   동경도 , 북해도 - 일도   교토, 오사카 - 2부 현(우리나라 도) 43개 시-정-촌 (리) 이렇게 행정 구역이 되어있다.
300여개의 작은 나라의 영주가 있었던 사회가 지금도 그런 영향이 남아 지방자치 도, 시, 마다 세금, 교통 요금 등이 틀린다.  
국회의원 은 상원, 하원이 있으며 중의원은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역할인데  500명 정도 되며 중의원을 견제하기 위한 의원이 참의원이다 . 인원은 중의원의 반수 정도이며 임기는 3년이다. 중의원은 4년마다 선출하며 참의원은 3년마다 1/2 인원을 뽑고 나머지 1/2 은 3년 임기 유지한다.
2005년 현재 자민당이 집권하고 있다. 파란이 많은 당이며 의석수를 많이 가지고 있는 당이다. 고이즈미 수상은 말이 많고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현재 인기가 없으며 이혼하고 혼자 산다.
고이즈미 아들이 아버지 인기 영향으로 연예인이 되었다. 그러나 인기는 없다, 수상의 아들이 연예인이 된 것은 일본에서 최초이다.

멀리 아소산이 가까워지자 아소 5악 (봉우리) 중악에서 연기가 올라온다. 미니버스 타고 올라갔다. 길가의 “ 민숙”이라고 한자로 표기된 건물은  우리나라로 보면 민박 이다. 숙박요금이 하룻밤에 3만원정도라고 한다.
아소 산 목장은 소, 말을 방목한다. 아소산 올라가는 길 가장자리 도로 표지판의 “소 그림 “ 도로는 소, 말 우선 도로이다.
아소 산 올라가는 도로가 나무에  눈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화산이 가까워질수록 화산 연기가 큰 굴뚝에서 올라오는 듯하다.
아소 산 분화구 까지는 다행이 날씨가 쾌청하게 개여서 타고 간 버스로 올라갈 수 있었다.
사진으로 만 보던 시커먼 화산 연기가 품어져 나오는 광경을 처음으로 직접 가까이에서 보니 자연의 장엄함과 위대함에 놀라움이 앞선다.
아소산은 해발 1,000m 가 넘는 5개의 산봉우리인 나카다케(中岳), 다카다케(高岳), 네코다케(根子岳), 기지마다케, 에보시다케의 5개산,과 외륜산(外輪山) 화구원(火口原)을 총망라한 명칭이다.
이중 나카다케는 아소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화산으로 아직도 활동 중인 모습을 케이블카에 탑승하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화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칼베라호“ 는 분화구에 물이 차여 있는 데 이 분화구가 아소 산의 40배 면적이다.
아소산과 세또대해, 아리야끼해 는 30만 년 전 큰 화산 폭발로 3,776미터의 높이로 용암을 쏟아 내었다. 그 쏟아낸 용암에 의하여 두개의 섬이 연결되어 한 개의 섬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 후 물이 차있는 분화구가 10만 년 전 다시 폭발하여 용암이 분출되어 현재의 아소 산을 만들었다. 아소산  나까다께 중앙에 살아있는 화산으로 58년과 79년에 폭발했다. 그 폭발로 화산석이 1Km 나 날아갔다고 한다.
활화산 가스냄새가 엄청나다. 현재 실시간으로 관측소에서 관측을 하고 있으며 화산 연기가 바람에 따라 방향을 바꾼다. 기관지 천식환자는 화산 가스를 주의해야한다고 한다.   표면온도는 100 °C 지하는 1000°C  이며 붉은색 화산 용암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소산 아래 병풍처럼 둘러싼 128km 외륜산(外輪山) 자락의 물이 빠진 분지에 10만 명 인구가 현재 살고 있다.
어디로 가도 지진, 화산, 태풍, 해일 이 일어나기 때문에 당시 화산 폭발로 사람들이 다 흩어져도 정착한 곳에  다시 모인다.
이곳에서 조직사진을 촬영을 하고 배낭에 매고 온 호스만 카메라로 풍경 사진을 몇 커트 촬영했다.
다른 친구들은 기념 촬영만하고 먼저 내려가고 있다. K 친구와 부인과 걸어서 휴게소 까지 내려오기로 했다.
내려오는 도로 가장자리에는 눈이 아직 녹지 않아서 하얀 설경의 분위기를 연출해주고 있다. 설경을 배경으로 부부들끼리 기념촬영을 하면서 걸어서 내려오니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부부가 함께 여행을 자주 가지 못한 K 부부는  기념 촬영에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휴게소의 대기된 버스는 우리일행을 산 중턱 호수를 마주하고 있는 지점에 지어진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하였다.
식사 메뉴는 일본 카레를 포함한 뷔페식이었는데 식사를 떠다가 기겁하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 숟가락가지고 가지마세요” 라는 한글로 된 글귀였다. 이 글귀 때문에 우리일행은 이번 여행일정에서 일본 쪽발이 욕을 하는 웃지 못 할 화제 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이곳에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대다수가 한국 사람들이고 나이 많은 아주머니일행들도 있는데 젓가락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일본식 식사법이 불편하니 아마 스테인리스 숟가락을 슬쩍 하는 모양이다.
우리 국민의식도 문제이거니와 또 그렇다고 한글로 써놓은 글귀 그것 역시 보기가 불편한 일이다.
나는 빠르게 식사를 하고 아내와 함께 식당 주변 나무에 핀 눈꽃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몇 커트 촬영하고 풍경도 촬영했다.  
항상 두 가지 일을 하려니 나는 여행할 때 마다 매우 바쁘다. 그래도 그 바쁜 시간을 나는 즐긴다.
주어진 시간이 다되어 우리 일행은 히메지 성으로 향했다. 일본의 성을 메이지 시대 때 거의 철거하였다. 그중 지금은 50개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일본의 임대 풍습은 우리와 다르다. 세입자들은 주인에게 사례금을 2배를 준다. 보증금은 달세의 3배정도이다.  도시에는 달세 200만 원짜리 이하가 없다. 전세 들어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 나가면 다시 임대 전의 상황으로 원상 복구 해주어야한다.  주인에게 준 보증금을 다 찾아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샐러리맨들은 도시락을 제일 많이 먹으며. 덜 뜨거운 음식을 먹는다.  역 주변의 캡슐 호텔을 4-5 만원 비용으로 자주 이용한다.
지하철이 끊길 때까지 술 마시는 남자는 없다. 3차까지 할 수 없는 문화이다.
대졸, 고졸 등 학력으로 월급이 차이 나는 사람은 없다. 중산층 계층이 두꺼운 나라가 일본이다. 생활의 정도는 평균 정도 어느 집이나  비슷비슷하다. 단지 돈쓰는 취향만이 다를 뿐이다.
외모 꾸미는 데는 투자하지 않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성형 수술도 별로 하지 않는다.
사치가 별로 없으며 의료비와 건강 지키는데 신경을 쓴다. 일본 아낙들의 얼굴을 보면 대부분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다. 화장품 비가 별로 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사루와 마시 에 원숭이 쇼를 관람하기위해 이동했다.
원숭이 쇼는 조그마한 공연장에서 잘 훈련된 원숭이들을 코미디 형식으로 진행했다.
다리 건너뛰기, 원숭이가  안보는 사이에 의자를 하나 빼서 건너뛰게 하는 것 등 사회자가 익살스럽게 연출을 시도하였지만 보기에 그렇게 우스워 보이지 않았고 훈련시키면서 고생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처음에는 잠깐 호기심이 들었으나 나중에는 지루하여 베트남 수상 인형 쇼를 보는 것 같이 지겨운 마음뿐이었다.                                 약 40분정도의 원숭이 쇼 관람을 마치고  구마모토 성으로 이동하였다.
구마모토성은  토요토미 제1부하  가토키요마사(加藤淸正)에 의해 1607년 완성되었으며, 약 7년간의 대공사였다고 한다.
가토기요마사가 조선 침략 때  울산성에서 갇혀 물이 없어서 고생하고 일본으로 돌아와서 축성한 성이 구마모토성이다.
성안에는 우물이 많이 있는데 가토키요마사가 울산성에 갇혀서 물 고생한 것 때문에 우물을 많이 개발하였다고 한다.
  구마모토 성은 일본1800년 명치시대 가고시마 출신 장군 사이고다까모리 가  일으킨 역사적 내란인 세이난노에키(西南之役)때도 성을 굳건히 지켜내는 난공불락의 성으로 위세를 떨쳤다고 한다.
  성 주변에 돌담을 쌓고 해자(호수물)를 파서 만들어 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성 모양은 직선이 아니고 미로로 만들어 졌다.
  내부의 모습도 치밀하게 시공되어졌고 돌담 쌓기 명인이 쌓은 성으로 적이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쌓았다. 멀리서 보면 학이 비상하는 모습이라서 “백로성”이라고도 한다.
성이 평성이며 교통의 요충지에 성을 쌓아 무사들이 700년간 통치하였다. 성 주변 곳곳에 나무를 심어 성을 보호 하고 있으며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쌓은 성이다.
막부시대에는 신 불교 등장으로 다도 문화가 발전하였다. 무사들은 패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으나 어떻게 하면 부끄럽지 않게 죽느냐를 생각한다고 한다.
일본에서 할복자살은 무사들만이 할 수 있는 책임정신 특권이라고 한다.
사꾸라 꽃잎이 한꺼번에 떨어져 내리는 것과 무사의 모습을 생각하며 가문을 표현하는 문양이 그려진 기를 들고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명예라고 생각한다.
가문의 문양을 주로 나타내는 곳은 길거리 카페, 비석에 문양의 깃발을 게시하여 표현한다. 열여섯 꽃잎을 가진 문양의 국화는 왕실의 꽃이며 일본 국화이다.
무사는 죽음이 앞에 있는 적장의 예우를 최대한하며 이 순신장군을 죽인 적장의 아들이 이 순신장군을 존경해서 자기 집에서 제사를 지낼 적에 이 순신 장군 제사를 함께 지낸다고 한다.
적대국인 미국의  루주벨트 대통령 죽음에도 일본인은 심심한 애도 전보를 보냈다.
독일의 히틀러는 루주벨트 대통령 죽음에 “지상에 악독한 적이 죽었다”.라고  표현한 반면 일본인들은 일본에 핵을 공격한 루주벨트에게 애도를 표현하였다고 한다.
어떤 경기에 심판이 부정 판정을 해도 일본은 일단 승복한다. “ 운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 하면서.........
경유는 1리터에 89엔 (890원) 보통 1리터 105엔 (1050원) 고급 1리터 150엔 (1500원)이다.    우리나라 마티즈처럼 생긴 경차는 110만 엔 (한화 1,100만원) 고급 승용차는 8천만 엔 이상 경차는 세금은 일년에 8만원 정도라고 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3인 여성이 있는데 그중한명은 “다베이준꼬“이다. 이여성은 세계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였고 7대 대륙의 최고봉을 모두 정복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는 비틀스 존 레논 부인 “오노 요오꼬“ 1969년 존 레논과 결혼했으며 존 레논의 첫 번째 부인 신시아와는 7살 연상이라고 한다.  2번이혼한 오노 요오 꼬는 전위 예술가로서 1980년 총을 맞아 존 레논이 사망하자 비틀스가 해체되었으며 "비틀스를 해체시킨 마녀다." 라고 비난 받았다.  행위예술가로서 오노 요오고가 유명하다.
비틀스의 대표작 헤이쥬드를 잠시 살펴보자.

헤이 쥬드

쥬드, 너무 나쁘게 생각마
슬픈 노래도 부르면 기분이 나아지듯이
마음으로 그녀(새어머니)를 받아들이면
좀더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꺼야

쥬드, 두려워하지 말고
니가 먼저 마음을 드러내고 그녀를 잡아
그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좀더 좋은 관계로 시작할 수 있을 꺼야

고통을 느낄 때마다 참고
너의 어깨에 세상의 모든 짐을 지려 하지 마
자기마음을 차갑게 해 냉랭하게 행동하는 게
얼마나 바보짓인지 너도 알잖아

쥬드, 날 실망시키지 마
그녀를 봤으니 지금 가서 붙잡아야지
그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넌 좀더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줄건 주고
시작이야
누군가 함께할 사람을 넌 기다리고 있잖니

모든 게 너한테 달렸어
쥬드,넌 할 수 있어
네가 필요한 행동이 너의 어깨에 달려있어

쥬드, 너무 나쁘게 생각마
슬픈 노래도 부르면 기분이 나아지듯이
마음으로 그녀(새어머니)를 받아들이면
좀더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거야

Hey Jude

Hey Jude, don't make it bad.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Hey Jude, don't be afraid.
You were made to go out and get her.
The minute you let her under your skin,
then you begin to make it better.

And anytime you feel the pain, hey Jude, refrain,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s.
For well you know that it's a fool who plays it cool
by making his world a little colder.

Hey Jude, don't let me down.
You have found her, now go and get her.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So let it out and let it in, hey Jude, begin,
you're waiting for someone to perform with.
And don't you know that it's just you, hey Jude, you'll do,
the movement you need is on your shoulder.

Hey Jude, don't make it bad.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Remember to let her under your skin,
then you'll begin to make it
better better better better better better, oh.

Da da da da da da, da da da, hey Jude


이 노래(Hey Jude)는 지난68년 발표된 노래로 당시 빌보드 핫백 싱글 챠트(미국)에 연속 9주 동안 넘버원한 히트곡이다.
이 노래의 영감은 폴 매카트니가 존 레논과 그의 아들 줄리앙 레논을 보고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존 레논과 첫 번째 부인 신시아와 두 번째 부인 오노 요코와의 싸움에서 상처받은 줄리앙 레논을 위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노래라고 한다.

다른 해석으로는 쥬드는 유태인을 나타내기도 하며 당시 이스라엘은 이슬람국가에 대한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켜 국제적 비난 여론에 사면초가인 상태에서 이 노래가 나왔고 특히 이들은 영국인이지만 미국 내 거주하는 유태인으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다음은 대유부인 이야기이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당시58세)이 도쿄 나이트클럽에 있던 호스티스 출신의 예쁜 여자(18세)를 아내로 맞이했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호스티스와 결혼한다고 비난했다,
수카르노 대통령이 실각이후 사망하자 대유는 일본기업에 진출하여 로비스트로 활약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이 여자를 거치지 않으면 무역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나라에 별장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는 탤런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는 칠기를 많이 사용하나 도자기도 많이 사용한다. 도기는 붉은 점토를 사용하여 투박하다. 자기는 고령토를 사용하여 매끈하고 가벼워 사용하기 편해 많이 사용한다.

일본사람들은 도자기 애정이 각별해서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잡아 들여온 도공들로부터 도자기 문화를 부흥시켰다. 일본 아라따에 라는 곳에 현재에도“ 이천평” 도공의 비석에 제사를 지낸다.
당시에 잡혀온 도공들은 일본 무사와 같은 대우를 해주었으며 10년 후 토지와 임야를 분배하여 가정을 일궈주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형편이 되도록 만들어 버렸다.
이처럼 일본은 직공, 기술자를 우대하여 기술이 발전되도록 한다고 한다.
이후 일본은 자체 도자기문화를 생성해서 상품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제조해서 유럽에 수출했다.
일본의 인구 일억 이천육백만 명 중  50%  6,000 만 명이 프로야구 팬이다.
도쿄 옆 일본 롯데 마린스의 본거지인 지바에 자이언츠 팀에 이승엽이 소속되어 있다.
시합은 봄, 여름에 두 번 열리며 고센(고교)야구를 50 % 이상 즐긴다고 한다.
스모 경기도 47가지의 기술이 있다고 한다. 몽고, 한국, 일본 씨름경기 는 기술이 많다.
한국 씨름은 잡고 시작하지만 일본 몽고는 47가지 기술을 이용하여 경기를 한다고 한다.
스모 경기는 체급이 없지만 한국 씨름은 체급이 있다. 스모는 체급별로 경기를 하지 않고 실력별로 경기를 한다.
홀수 달에 는 혼바 쇼를 보러간다. 나이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경기이다. 스모는 일본 국기이며 스모 경기 중계방송을 TV 에서 장시간 동안 중계 한다.
일본의 풍습도 경기 시작 전에 (스모) 경기장에 소금을 뿌린다.
입을 물로 헹구고 경기에 임한다. 신사 앞에 물먹는 곳은 입 헹구고 손 씻는 곳이다.

성의 내부를 둘러보았으나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을 침략한 일본장군이 쌓은 성이라고 하니 마음에 거부감이 일어 건성으로 휘~ 둘러보고 성 내부를 빠져나와 조직사진 한 장을 찍고 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출발하였다.

가이드  조정임씨의 안내 멘트가 시작되었다.
일본의 음주 문화 중 맥주는 기라맥주와 아사히 맥주 가 유명하며 니혼슈(청주)정종을 주로 마신다고한다.
까마귀는 일본에서는 행운의 새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때는 길조로 한때 그림에도 많이 그려졌으나 조선시대부터 재수 없는 새로 되어 버렸다.
가라오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발명품이다.“가라오케”, “가라” 는 비었다는 뜻이고 “오케“는 오케스트라라는 뜻으로 합성어이다. 가수가 목이 아파서 노래를 못 부를 때 부르도록 이노에 라는 사람이 만들었다.
일본에서의 대표적 대중오락은 빠찡꼬이다. 카운터에서 구슬을사 구슬을 굴려서 구멍에 넣는 게임인데 “가창코“ 라는 오락을 개발해서 빠찡꼬로 발전했다고 한다. 대중오락이나 내부를 보면 도박이다.
일본에서 재일 교포 들은 특히 인종 차별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머리는 좋으나 인종 차별로 인하여  일본에서 취직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빠찡꼬 점에는 취직이 되어 빠찡꼬  기계를 개발하여 거대 바찡꼬 산업으로 발달하게 되었고 제일교포 불고기점 김치 전문점 부자들은 빠찡꼬 사업에 주로 손대고 있다 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 ETC 전용 게이트가 있었다. 이 출구는 차가 바이패스하면서 센스로 고속 도로 사용료를 카운트한다. 도로 사용료를 한번 충전하는데 20-30만원 정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방식을 고속도로 게이트에 많이 채용하면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식사는 뷔페식으로 했는데 규모가 큰 음식점으로서 많은 손님들이 운집하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음식은 간도 맞지 않고 느끼해 입맛에 맞지 않아서 삼겹살에 일본된장국에 식사를 마치고 구마모토 비엔토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쓰미마쎙~ 제 3 편에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