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순룡 - 할빈 기행

조회 수 106 추천 수 0 2018.09.25 14:30:07

할빈 기행                                                                                                      옥순룡

 

북만주 할빈을 방문 할 때마다 북한 과 접경한 곳을 한두 곳 들린다.

분단으로 갈라진 한반도 꼭데기 북한 접경 부분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한국전쟁이다. 강대국들의 전쟁 노획물 한반도 땅덩어리를 지네들끼리 금을 긋고 잘라버렸다.

그들의 장난 같은 행위가 장기간 영원한 세월을 지속되어 오면서 한민족의 마음도 금이 그어진 것이다. 참으로 통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청마 유치환선생 께서 일제 강점기에 기거하시면서 시 작업에 활동하신 할빈을 청마사업 기념회와 거제시가 공동 주관하는 회수가 벌써 4회 째인데 나는 행사에 연이어 3번 참여하였다,

인천 공항에서 이륙한 아시아나 항공기는 서해 쪽 대련 상공을 둘러서 하얼빈으로 기수를 틀고 있다

분단 적대 국가인 북조선이 상공을 오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내나라 내 땅인데도 불구하고 목적지를 직선거리로 가지 않고 좌회전해서 들어가는 가슴 아픈 이 항공 항로가 언제쯤 통일이 되어 풀릴 것인가

생각을 해본다.

할빈 북만주 상공에 도달할수록 드넓은 옛 발해의 평야가 비행기 날개 아래로 평화스럽게 보인다.

할빈 동력 소학교에서 매년 치러지는 청마 백일장은 초, , 고 정도의 학력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흑룡강성 하얼빈 문인협회에서 주최하여 심사까지 하여 시상을 한다.

도착한 다음날 오전 백일장을 열기로 하고 도착한 오늘은 할빈 시내를 둘러보았다.

먼저 할빈의 차 없는 거리 중앙 대가를 걸었다. 세 번째 걸어보는 거리지만 항상 깨끗하고 러시아 문화가 들어와서 러시아에서 건축한 근대 건축물들이 러시아 풍으로 지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건물 전체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주상 복합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중앙 대가를 지난 끝자락에는 송화강에 다다른다.

송화강은 하얼빈의 젖줄이다. 이곳에서는 유람선이 떠다니고 이따금

물건을 가득 실은 운반선도 지나간다.

이곳의 연인들은 휴일이면 중앙대가에 있는 전통 있는 아이스크림 파는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남자가 아주 작은 여자 핸드백을 어깨에 걸치고 데이트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곳의 남녀 데이트 풍속도는 데이트 할 때 여자의 핸드백을 남자가 들어주던지 어깨에 메던지 하면서 데이트를 하고 또 부부들은 남자가

유모차를 끌고 무거운 육아용 가방도 남자가 든다.

여자는 빈손 맨몸으로 걸어가 면된다. 가정에서도 여자를 섬기는 문화가 정착되어있어서 힘들고 거친 일은 남자가 가정 일이라도 모두 다 처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여성의 지위 향상이 정착 되어가지만 예전에 유교적 사상이 팽배 하던 시대에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안중근 기념관으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할빈 역 인근에 있던 안중근 기념관이 공사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전 하였다고 한다.

위치가 바뀐 기념관 일층은 안중근 기념관 2층은 광주가 고향인

정률성 음악가의 기념관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전하기 이전의 안중근 기념관은 기념관 창과 할빈 역이 건물로서 접한 건물 바깥이 할빈 역으로 현재 사용 되어 지고 있는 곳으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폭탄으로 투척한 장소가 삼각형으로 그려져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이 느껴지는 생생한 현장을 기념관 안에서 창 바깥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곳으로 이전해 버려 그 현장을 이제 볼 수 없이 되버렸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종전의 두 기념관은 정말 세심하고 사용한 유품과 기록이 박물관 형태로 전시 되어 있었는데 새로 만들어진 곳에 와보니 모두 스크린 인쇄로

프린터 되어 벽에 부착되어 있다.

보는 순간 실망하였다. 특히 종전의 정률성 음악가가 생전에

육성으로 방문객들을 들을 수 있도록 한 메기의 추억방송 장치는

아예 없어지고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사스의 영향으로 인해 빚어진 정치적인 소산인가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스 정교회 성소피아 성당을 3번이나 올적마다 본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녹색 페인트로 칠해진 지붕 색과 잘 어울리는 게 모던하게 지어진 성당이다.

현재는 하얼빈 건축 예술관으로 이름을 바꿔 하얼빈의 역사가 담긴 흑백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이틑 날 백일장 행사를 개최하는 동력 소학교를 방문하였다.

이번 행사는 할빈시 조선족 중소학생 할빈시 산하 10여개 조선족 중소학교에서 예선을 거쳐 선발된 5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소학부와 초중부 고중부로 나누어 주어진 명제에 따라 작문을 쓰는 백일장이 열린다.

소학부에 명제는 사진 한 장개학날이고 초등부 명제는 고향의 변천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고중 부는 네 덕 ”, “내 탓휴대폰이었다

이곳 재중 동포 조선족들이 다니는 학교에 오면 매번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의 어느 초등학교 보다 시설 면이나 선생님들의 가르치는 열정이 뒤떨어지지 않는 다는 점이다.

실내 계단 정면에 보이는 곳에 모두 한글로 쓰인 우리의 속담들이 마음 찡하도록 좋은 글귀로 장식되어 있다.

사랑은 마음속에 자란다.”

부모는 문서 없는 종이다

은혜를 베풀었거든 보답을 받으려 하지 말라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 같은 것이 친구의 우정이다.”

참다운 사랑의 힘은 태산보다 강하다 등의 글귀들이 계단 올라가는 사이사이 정면 부분 전체에 쓰여 부착 되어 있다.

특히 부모는 문서 없는 종이다 라는 글귀를 읽고 방문 회원들 중에서 이 라는 말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 초등학교에서는 이런 말을 적은 글귀를 본적이 없다. 아마 부모는 세상 뜰 때 까지 사랑으로 보살피는 자식들의 이 아닐까 싶다.

백일장 수상은 장려, 동상, 은상, 금상, 대상, 이렇게 수상 했는데 우리 동포 어린이들의 창작 글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대상은 초중부의 오상시 조선족 중학교 박신향 어린이가 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당선 되었다

이 어린이의 글과 백일장 심사위원장을 밑은 리태복 흑룡강대학교수의 심사평을 잠시 소개 할까 한다.

[ 대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박신향 ]

나는 항상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나는 매우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나는 그저 무언가를 바라기만하고 나 자신을 바꿔보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항상 관심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노력 했습니다. 좋은 일도 많이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인기는 항상 그 자리였습니다.

속상한 나머지 나는 펑펑 울었습니다. 친구들은 최선을 다해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러는 속에서 나는 한 가지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슬퍼하고 울면 친구들이 모여 드는 것입니다.

그 후부터 나는 무슨 일이 있으면 울었습니다. 어떨 땐 억지로 눈물을 짜서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울음이 빈번해짐에 따라 친구들이 지쳐가는 듯 했습니다.

친구들 눈에는 내가 울 줄밖에 모르는 울보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왕따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말했습니다.

난 너 그대로가 좋았어. 왜서 그런 무리수로 써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니? 넌 그러지 않아도 착하고 너그러운 아이야 ...”

그래 지금 봐 , 우리가 이래서 너를 떠났잖아

!~!~! 뭔가를 깨달은 나는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거울속의 내 자신을 보았습니다.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귀엽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항상 웃으면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으니 얼굴에 행복감이 가득 찼습니다.

나는 옛날에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내 옆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난 그저 그들의 동정심을 리용해서 관심을 끌려고만 했습니다.

 

나는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사랑을 나눠주고 표달해야 그 사람들도 나를 많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빛나는 웃음을 선사해야 된다는 것을.

지난날의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관심을 끌려 하는 눈물이 아닌 진심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후 나는 바뀌기 시작 했습니다. 항상 웃으려고 노력했고 주변 사람들을 다시 사랑하려고 애썼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다보니 나는 차츰 반에서 가장 너그럽고 쿨한 아이로 거듭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를

사랑 하는 사람도 많아 졌습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우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다른 사람한테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무언가를 바라기만 해서 안 되고 나 자신을 먼저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신향/오상시 조선족 중학교 2학년 1/지도교사 김해영

 

아름다운 글이다.

할빈 조선족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이라고 표현력과 사고가 우리나라

어린이 문장력 솜씨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너무 순수하다

여기서 이태복 할빈 심시위원장 심사평을 잠깐 본다면

사람은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에서부터 출발하여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성을 파고 들었다.

한편 진솔하고 가식 없는 인생자세와 행위만이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 타인의 사랑을 받으려면 우선 남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도리를 철리적 높이에서 서술하였다.

또한 유기적인 구조와 류창한 언어도 단연 뛰어 났다.“

이렇게 심사평이 주어 졌다.

이렇게 좋은 글을 쓸수 있도록 우리 거제 초,,고 학교에도 수시로

백일장을 열어서 어린이들의 글짓기 창작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백일장을 마치고 할빈 문인협회와 만찬이 있었다. 매년 해오는 합동 저녁 식사지만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분위기가 자연스럽고 동포애가 묻어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

할빈 문인 협회와 소학교 권국화 교장선생은 앞으로도 계속 백일장이 오래도록 지속되어지기를 염원한다고 말한다.

사실 재중 동포 조선족 거주 지역에는 한글 보급과 한인들이 위축 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 해야 할 일들을 거제시와 청마 사업회에서 조그마한 사업이지만 하고 있는 셈이다.

구 소련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과 중국 만주에서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들을 지속적으로 한글이 말살되지 않도록 한글 보급과 사용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도록 소학교 부분은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할빈에서 고속 전철로 심양으로 이동하였다.

전철 차창 밖으로 곡식을 심어 놓은 풍경이 마치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이동하는 떼제베 고속 전철을 탄 것 같이 바깥 풍경이 유럽 들판 같은 모습이다

이따금 나타났다가 지나가는 붉은 벽돌로 지은 집단 농장 같은 마을 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꼭 유럽 풍경이다.

전철 내부는 우리 고속철만큼 고급스럽지 않지만 실용적으로 내부시설이 된 차량을 보면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본다.

티비를 시청할 수 있는 모니터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어폰 장치도 열차 내부에 시설이 되어 있지 않다.

의자도 넓지 않고 좁다, 그러나 그런대로 편하게 여행 할 수 있었다.

심양에 도착하였다,

심양은 요녕성의 성도이면서 동북 지방의 최대 도시이다.

서탑거리를 먼저 둘러보았다. 가게 상호가 한글로 적혀있다.

특히 옷가게 가게 내부는 국내 옷가게와 진열과 비슷하다.

한국 유행 여성의류들이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한류 영향으로 거리에 다니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한국 여성들의 옷차림과 느낌이 똑 같다.

화장한 모습도 한국 거리에서 본 아가씨들의 모습과 같다. 이십 년 전 방문한 그때의 중국 아가씨들의 거무티티한 얼굴 모습이 없어졌다.

문화란 국경이 없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

누루하치 궁을 아침 일찍 보러 갔으나 비수기 2주일 월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압록강 단동으로 차로 이동했다 편도 5시간 소요 되는 하루 일정이다.

곧 중식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중국이라도 조선족들이 사는 거주지이기 때문에 거의 음식이 한식이다,

부침개 와 잡채, 된장찌개 등 깔끔한 음식이 나왔다. 잡채의 당면은

국내의 당면과는 어딘가 다른 쫄깃한 맛으로 식감이 좋았다.

식당의 청결 도는 국내처럼 깔끔하지 않았으나 음식 맛은 고향 토속 음식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단동 압록강 철교로 이동하였다. 단동 압록강 철교는 한국전쟁 때

끈임 없이 인해전술로 물밀 듯이 밀려오는 당시 중공군들을 차단하가 위해서 미군 폭격기가 폭격해서 끊어졌다.

그 끊어진 철교가 오늘날의 역사의 현장으로 관광지가 된 것이다.

압록강 철교 위를 걸어 보았다. 건너편 철교에는 적재함에 짐을 가득 싣고 줄지어 나오는 트럭들이 보인다.

북한에서 물자를 수송하는 트럭들이다. 미국에서 대북 압박을 해도 중국에서 특별히 대응하지 않으니 별반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우리와 미국 북한이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연이어 압록강 유람선에 승선하여 저 멀리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가 보이는 곳 인근까지 유람선으로 둘러보았다.

압록강 중앙지점에 강바닥을 준설하는 준설선에 인공기가 걸린 선박이 정박해 있다. 남자가 나오는데 머리를 깍은 북한군인 모습이다.

준설하는 작업도 군인들을 활용해서 하는 가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백부께서는 한국전 참전으로 전사 하셨다. 백부님은 지금 고현

충혼탑에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내 선친께서도 한국전 참전상이 용사로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허리를 다쳐서 결국에 상이용사가 되어 영면하셔서 산청 호국원에 어머니와 봉안되어 있다.

압록강 끊어진 철교를 보니 불현 듯 아버지와 백부님이 생각이 나는 것은 왜? 일까.

한국전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내 조모님께서는 운명하시기 전에 소리소리 질렀다. 치매도 왔지만 그 치매가 아들을 전장에서 잃은 사무치는 고통으로 지내오신 것이 인민군 온다. 네이놈국방군아 ! 하고

밤이 새도록 고함을 몇 달을 지르시다가 기력이 쇠하시니 결국 운명하셨다. 조모님도 아들을 잃은 한국전쟁 피해자다.

내 선친은 교전하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허리를 다쳐 못 걸어 전우의 도움으로 겨우 포위망을 뚫고 후퇴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 국군병원에 입원하여 계시다가 의병제대를 하셨다.

아버지께서도 세월이 흘러 연로하니 치매가 와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는데 병원에서 치매로 정신을 놓으시면 군생할 상태로 돌아가서 전쟁 치는 상태가 되어 버리곤 했다.

본인의 소속을 얼마나 외웠던지 병원에 입원당시 정신이 전쟁상태가 되어 버리곤 하였는데 그때 소리 지르는 것을 적어서 국방부에 조회를 보냈더니 그 조회 결과가 정확하게 맞는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내가 국방부 사이트에 접속을 해서 민원 확인을 하였더니 아버지 말씀하시는 것과 당시 중대장 이름 전쟁터 지명 등이 일치 하였다.

내 조모님과 백부와 선친은 한국전 피해자다.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본인들의 삶을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게 했다.

그 것은 내 어머니와 우리 형제 가족 전체에 까지 전쟁 트라우마 영향이 미쳤다. 참으로 전쟁은 전장에서 전투를 직접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당하지 않은 사람도 그 트라우마 영향으로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국민이나 정부에서 알고나 있을까?

한국전 참전 용사에게 전쟁이 끝난 후 수십 년간 보상은커녕 옳은 대접도 국가에서 해준 것이 없었다. 최근 몇 년 부터 일이십만 원씩의

참전 수당이 지급된 것이 전부일 뿐이다.

지나온 정권에서 북한에 수많은 돈을 평화통일 이라는 명분으로 지원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북한에 통일 이라는 명분으로 지원하기 이전에 자유 국가를 지키려고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용사들의 보상과 케어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생각에 한 번씩 잠기게 될 때마다 내가 아버지에게 전쟁 트라우마로 인한 영향을 온 가족들이 받은걸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진다.

요즘 정치 행태에서 매일 뉴스로 보는 위정자들의 못된 비리의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나라를 지킨 참전 영웅들을 제대로 보살펴주고 대접하지 않고 자기들의 뱃속 만 챙긴 비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참으로 괘씸한 생각이 든다.

심양으로 귀환하였다. 옛 만주 봉천이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었던 심양의 또 다른 지명이다, 97년 친구들 셋이서 심양에 내려 친구의 사촌 형님이 살고 있는 무순을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중국 심양과 지금의 중국심양의 모습은 현저히 천지를 개벽 한 것 같은 변화의 발전이다.

거리의 차량도 모두 현대식 모델로 거리에 가득 찼다. 실로 놀라운 발전으로 사회주의 국가로서 자유 시장 체재를 도입한 성공적인 사례이다.

북조선도 정치 구조를 개혁해서 중국처럼 조속히 발전해서 인민의 인권과 삶의 질이 현저히 개선되어 한국과 경제 수준이 비슷해져서 서로 국경을 넘어 자유스럽게 왕래할 수 있는 부분적 통일이라도 되어 후세들에게 전쟁이라는 아픔을 대물림 되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옥순룡 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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