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편

조회 수 15385 추천 수 0 2006.12.19 09:23:24






















유럽여행 -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편
2005/10/06

   새벽 일찍 잠을 깨서 아니 눈만 감고 있었지 ! 이 선생 코고는 소리에 잠 못 들어 ㅠ.ㅠ  호텔 창문을 열어보니 와~~ 이건 부산 영도 봉래산 비탈의 판자촌의 모습인가 !         
   아니 판자촌은 아니고 다양한 박공식 고급 주택 건축물이 산속의 숲속에 전원주택의 냄새를 풍기며 산 꼭데기 까지 빽빽이 지어진 것을 보고는 잠시 놀랐다.
   눈으로 본 풍경의 느낌은 건물의 모습으로 보아 오랜 역사의 주택 단지로 느껴졌다. 먼동이 서서히 트이기 시작하여 주택이 밀집한 곳 산 정상에서 태양의 빛이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사진을 촬영하였으나 삼각대도 준비하지 않았고 그라데이션 필터도 준비하지 않은 채  촬영해보니 결과물에 실망이다. 그래도 기록용으로 몇 컷 촬영하였다.
   호텔에서 조식 후 잠시 호텔 밖 경관을 둘러보았는데 두 칸짜리 전철이 시내를 가로지르며 운행되고 있었고 아스팔트 도로 포장상태는 노후 되어 표면이 울퉁불퉁 흥부도로로서 상태가 좋지 않아 사회주의 국가의 영세한 나라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로 중앙선은 흰색으로 그어져 가변 차선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오른쪽 4차선 왼쪽 2차선으로 구획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부다페스트 등기 지적과를 방문하였다. 진행부에서 통역아가씨를 별도로 초빙하여 우리 일행을 안내하게 하였다.
   부다페스트 등기 지적과는 별관 건물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시간은 거의 오전 10시를 넘기고 있었는데 민원실 입구에는 민원인들이 줄지어선 대기 줄이 입구 바깥까지 늘어져 있었다. 민원실 입구에서 채크를 받아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민원실 입구 줄서 있는 민원인들은 서류를 제출하러 온 사람들로서 하루 1500건 정도이며  변호사들의 변호 업무를 목요일에만 처리하므로  그로 인해 오늘은 민원이 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민원실이 이렇게 한다면 난리가 났을 걸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담담히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원실 내부는 유리 칸막이가 가로 쳐져서 구획되어 있었고, 민원인들과의 상담도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상담이 이루어져 민원인들을 위한 오픈된 공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또한 대기 의자도 없어 민원인들은 서서 서류를 신청하고 공무원들은 앉아서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과 격리 된 민원실 구조는 아직까지 사회주의 구 체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부다페스트는 인구 200만 명으로 토지 필지 수 100만 필지의 부동산 업무를 운영한다. 민원, 복사, 지적, 등기를 발급 받는 곳으로서 일일 방문민원 1500명 ~ 20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가장 큰 민원실은 창구가 30개 설치하여 운영하며 한사람 민원서류 교부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15~ 20분 정도 걸린다.
   부다페스트 등기 지적과 관계자는  이부분에 대하여  설명을 하면서 “처리 시간이 정말 빠르고 이상적인 아닌가. ! ” 하고 자랑을 하였는데 나는 이 안내를 받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거제시청의 경우 통합민원발급시스템을 구축완료하고 한건 당 창구 민원처리 소요 시간은 약 5-7분이다. 통합민원 전산기기에서 즉시 출력되기 때문에 컴퓨터에 입력하는 시간과 프린트에 출력하는 시간 외에 걸리는 시간이 없다.
   민원 처리 순서도 은행식 순번표가 적용된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에 순서를 바꿔서 발생하는 민원도 아예 차단되어 요즘에는 순서 어긴 것 때문에 고함 소리가 나지 않는다.
   민원실은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퇴근시간 까지 음악 방송을 해서 민원들에게 지루한 감을 느끼지 않게 하고 간간이 각종 전시회를 유치하므로 민원인들에게 볼거리까지 제공하며 입구에는 안내 도우미까지 배치하여 민원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 실정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래도 간혹 늦다고 민원인들 중에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곳사람들은 20분 정도 걸려서 한건의 민원을 해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는 이 나라도 민원시스템을 많이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 하였다.
   부다페스트 토지 지적 국 토지청장과 부장이 나와서 부다페스트의 토지 업무에 대하여 브리핑을 하였다.
   이곳 토지 지적국은 농림부에 속해있는 큰 부서로서 1개의 토지 청을 포함하여 19개부20개 과가 있다. 헝가리 전체 115개  토지청 사무실이 있다. 이곳은 100만 필지 토지를 운영한다.
   부다페스트는 유일하게 이곳에서  헝가리 전체의 등기부와 지적도를 인터넷으로 통합 발급한다.
   토지 측량과도 인터넷으로 업무를 연구 하는 연구소이다. 토지, 건물 부동산의 소유권 부분에서 이제는 소유주와 건물주를 이원화 하고 있다.
   토지 측량 면적, 소유자 밝히는 것은 법으로 엄하게 제정되어 있다. 엄격하게 법으로 정한 토지 소유주의 등록 공시 중요하게 취급한다.
현재 전산조직 인터넷으로 토지 정보 현황을 관리하고 있다.
등기부 기재사항은
토지소재,
토지고유 번호,  1-24000번까지 지번 부여
주소/ 편지 수신 처
면적(hr, m2)
토지용도 구분
건물용도 구분
다세대 소유주 표시
소유주 사항 표시
소유주의 제한 표시(미성년자, 장애자)
어머니 이름을 소유 사항에 기입한다.
   어머니 이름을 왜 적어 넣느냐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들의 답변은 엄마이름 기재는 헝가리의 전통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난 엄마와 자식은 부존재하다. 는 것의 증명이라고 한다.
   기재 순서는 / 생년월일, 이름, 엄마이름, 주민등록번호, 이며 주민등록번호 11자리중  1은 남자 2는 여자 표기이다.
  소유주 공동 소유는 이름과 지분을 기입한다. 3-4 명 각각 나누는 것은 토지 청에서 관리하지 않는다. 은행 대출시 담보사항도 기재 하며 은행명을 기입한다.
   자식을 위해 부동산을 구입 하였을 시 소유권은 자식이나 사용권은 부모이다. 가장 많이 바뀌는 조항이 이 조항이기 때문에 법조항이 자주 변하며 자주 변경되는 곳이고 손보고 신경 써야 되는 곳이다.

부동산의 등록 공시

1) 기록의 원칙 /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매매 시 토지 청에서 관리하고 있는 기록과 동일할 때 효력을 갖는다.
2)공시의 원칙/ 정확한 주소와 토지 지번만 제시하면 누구나 열람 발급가능하다.
인명에 대해 찾는 것은 일반인들은 열람 불가 하다. 사기 , 도망의 경우 부동산 추적 경찰이 시행한다.
3) 공신력/ 관에서 발급한 문서를 인정하는 제도
4) 누구든지 건의 할 수 있다.변호사, 공증인, 항상 변화대로 권리를 누구나 할 수 있다.
5) 토지 청에 제출하는 서류 우선순위의 원칙이 있다.
6) 변호사, 공증인, 법조계서류 문서로만 제출 가능하다.

   토지 청에 제공 13개 고유번호 첨부한 인지 필 첨부 등기부 등본 변조불가능 발급 자 기록 인터넷에 남는다. 전국망에 검색되어 금방 위 변조 알 수 있다.
   비공식 등기부 등본은 변호사 본인 확인 등, 공신력은 없고 땅을 공증하지 못한다.
등기부 등본 발급은 고유번호 지번 등 기본을 알아야 발급가능하다.
   토지 관리 부서에 특정인 이름으로 등기부 등본 발급요청 절대 불가능하다. 만약 이용 시 이용자 작업자  ID 남는다.
   토지 고유번호는 6자리 번호이다. 건물 대지 동시에 표시한다. 건물 베란다 표시, 도로 고압전선 철도, 전차도로 등 모두 기록되어 있다.
   현재 디지털 지적도 는 종전에는 하얀 백지위에 검은 선으로 작성되었으나 지금은 검은 바탕에 녹색 경계선으로 건물 도형 표시
   서류 제출 등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필지 해당 지는 붉은 색 사선으로 표시 한다.
해당 필지의 토지이동 현황을 알 수 있고 변경사항을 공식적이지 않지만 알수 있다.
   감시 검사 기능으로 등기와 토지 정리 현황을 매일 확인하고 있다.
헝가리의 지적도 전산화 작업은 2002년도부터 시작하여 계속적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
   헝가리 내의 등기부 등본 발급은 인터넷으로 전부 열람이 가능하다. 변호사 공증인 자치단체 공무원 등이 로그인해서 열람가능하다. 즉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민원인이 토지 사무소 의뢰해서 지방 어느 곳의 등기부 발급가능하다.
지적도 온라인 발급은 금년 5월부터 지적도를 뗄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운영이 안 되고 있다. 단 부다페스트 시는 가능하다.
   토지 이동 변경 권한을 중앙에서도 변경할 수 있는 기능부여가 가능하며  변호사, 공증인 열람기능은  가능하나 발급기능은 없다.
   민원인의 편의를 위해서 변호사 자치단체가 정보 열람민원인의 신속성처리의 신속성을 제공하기위해 SMS 인터넷 메시지 등을 이용하여 처리하는 기능을 신설 하였다.
수수료는 법으로 정해져 징수 한다.
   등기부 1부 2만원, 3개월 유효하다. 지적도 1부 15000원 모두 국고에 입고된다.
헝가리 측량은 대행법인체 시행하며 검사는 공무원이 한다.
   측량은 용역으로 일을 하며 감독권 측량성과를 협의 조정은 토지 청에서 시행 한다. 토지 측량은 신문 공고하여 하며 주민들에게 열람 통고 농림부 산하 비영리 단체 수입으로 하고 그곳에서 업무를 수행하게 한다.
   1920년 토지 측량 시행이후 40만 정도 새로운 서류를 작성  민원실 34명 근무 토지청 은 400명 정도 근무 한다.이곳에서 근무하는 토지청의 나이 많은 아주머니 여직원들은 우리 일행들에게 최대한 예우를 하며 정말 친절하게 대하였다.
   화장실이 급해 화장실을 찾으니  남자 직원이 직접  안내하여 주는 친절함도 돋보였다.
헝가리 전체 필지수 420만 필지 부다페스트는 100만 필지 지상에 인구는 1/5 거주 한다.

   우리 일행들은 토지청의 성의 있는 브리핑에 감사하며  홍삼 세트를 기념품으로 전달하고 토지청사 바깥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였다.
   다뉴브 강(도나우강)이 보이는 도로를 따라 점심 식사를 하러 이동하였다.
현지 식으로 육개장과 흡사하게 생긴 요리로서 야채에 올리브유와 식초를 버무려 먹는 야채 셀러드 빵과 고기 그리고 밥 육개장처럼 만든 고기스프 가 함께 나오는 “줄라시스민(줄라시: 전통 헝가리 음식)“ 이라는 요리로 식사를 마쳤다.
   밥은 알량 미로서 지은 밥이었는데 퍼석 퍼석하였다.
헝가리는 7개 국가 경계로  둘러싸인 내륙국가로 형성된 나라이며 소금이 귀하다. 소금을 많이 사용해서 음식물이 짜게 먹으며 심지어 밥에도 간 끼가 있다.
   음식은 중국식처럼 차례로 나오는데 맨 마지막에 메인 음식이 나온다. 이곳의 식당은 많은 외국인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 식당이 식당 규모가 헝가리에서 유명하고 전통 있는 식당이라고 한다.
   식사 후 슬로바키아 사람인 기사 “요셉” 이 운전하는 대형 버스로 부다 지역을 관광하였다.

부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하차하니 멀리 다뉴브 강이 그림처럼 보인다.

   지금의 부다페스트는 하나의 행정단위로서 통합되어 있으나, 다뉴브 강 오른쪽 연안인 부다 지구(地區)와 왼쪽 연안인 페스트지구는 오랜 동안 서로가 독립된 쌍둥이도시로 발전해 왔다.
   부다는 역사가 오래되어 고대 로마제국 때에 이미 성이 축조되었다. 이후 마차시대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합수브르크 지배시대 1980년 마리아테레지아 여왕시대 때에 재 건축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에 반해 페스트는 다뉴브 강의 범람원이었던 저평지(低平地)로서 홍수 등의 수해를 입어 개발이 늦어졌다.
   부다에는 산이 많아 토지이용의 여지가 없고 동서남북의 교통의 요지라는 점 때문에 상업도시로서 급격히 발전했다.
   1873년 두 도시는 합병에 조인하고, 도시 이름을 부다페스트라고 하였다.
부다는 강 연안 가까이까지 산이 바싹 닿아 있고, 기복이 심한 도시로서, 바르헤지 성산(城山)이라고 불리는 언덕에 벨라 4세가 몽고군의 침략을 피해 고지대에 성을 축조하였다.
    이것이 부다 왕궁이고 왼편 부다 왕궁 건물 첨탑과 마티아시 교회를 벨라 4세 때 건축 하였다.이처럼 이 전망대 언덕에는 헝가리 왕조의 왕궁과 마티아시 교회 등 역사적 건물들이 건축되어 있었다.
   부다 왕궁을 기준으로 오른쪽 페스트 쪽의 돔형 건물은 헝가리 국회의사당이 12시 방향에 서있고 2시 방향에 유시스턴 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돔 넓이가 96m 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아카데미·국립박물관·국립오페라극장·페스트콘서트홀 등 현대적 정치·과학·문학·예술의 중추기관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에는 또 합수부르크 오이낀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헝가리가 오스만 트루크족 식민지로 되어 있던 1699년 젠타 전투에서 오스만트루크 족을 물리친 기념으로 오이낀 장군 동상을 건립하였다.
    헝가리도 우리나라와 같이 외세 침략을 많이 받았다.
서로마가 2C 경에 점령하였고  5~8C 경에는 흉노족이 침입하였다.
원래 조상은 훈족과 머져리족으로서 , 8C경 머져리족이 7 부족으로 아라파트를 건국하여 초대 성이슈투만 대왕이 등극하여 110여년간 외세 간섭 없이 지냈다.
   그 후 외세 침략을 받아  터키 오스만트루크족 에게 점령당해 식민지로 살았다.
침략 순서는  몽고 ,터키, 합수부르크 ,헝가리 소비에트, 독일침공, 소련진군, 등 외세침략을 많이 받은 나라로서 역사가 외세 침략 역사와 연결된다. 그래서 많은 역사문화가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부다페스트는 헝가리 최대의 공업도시로서, 전국 공업생산의 약 50%, 공업종사자수의 약 26%를 차지한다.
   현재 부다페스트 인구는 220만으로 우리나라 대전광역시 정도의 면적과 비교되는 도시이다.
부다 지역은 부유층이 많이 거주한다.  
   부다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각종 트럭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요즘에는 보기 힘든 옛날 모델들의 차량으로 귀한 볼거리였다.
   성체에는 무수한 총탄 자국이 나 있었는데 독립 투쟁 때 합수부르크에 무릎을 꿇은 아픈 역사가 있는 곳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을 느낄 수 있었다.

   2차대전 때 독일과 소련이 치열한 전쟁을 하였다.  이곳에 건립된 자유의 여신상은 당초에는 사회주의 소련에 대한 추모비 역할로서 건립되었으나 소련이 붕괴되고  이후 1990년3월 헝가리가 민주주의 체재로 전환되자 현재는  “자유주의 여신상”으로 불려진다고 한다.

   헝가리의 “ 칼로체”(자수) 는 한점을 창작하는데 1년 이상 기간이 소요된다. 한점, 한점이 예술적 가치가 있어서 가격이 매우 비싸다.  가격고가 50 ~ 300유로까지 나간다.
칼로체 자수는 자손 대대로 기술이 전수되며 가업으로 이끌어 내려온다고 한다.
백포도주(토까이야수)는 프랑스 왕이 즐겨 마시던 술로서 만국 박람회에서 대상을 받은 술이다.
   우리나라가 1954년 헝가리에서 개최하는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기 위하여 선수들과 임원들이 돈만 지급하면 비행기를 타는 줄 알고  항공기 티켓도 예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나리따 공항에  도착 하였는데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표가 없어 망연자실하였다.

   한국 선수들이 비행기 표가 없어서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일본 내 재일 교포들이 주선하여 겨우 비행기 표를 확보하였는데 그것도 같은 비행기를 한꺼번에  타지 못하고 두 팀으로 나누어 가게 되었다.
   그중에서 또 2명의 자리가 모자라서 난처한 입장이 되어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이때 마침 프랑스인 신혼 여행객 부부가 한국 선수들이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는데 비행기 표가 없어서 경기에 출전 못한다는 딱한 사정을 듣고는 자기들 티켓을 한국 선수들에게 양보하여 겨우 헝가리에 갈수 있었다.
   헝가리에 입성하기 까지는 비행기에서 열차로  56시간의 장거리 여행을 한끝에  선수들은 파김치가 되어 겨우 경기에 참가하였다.
   시차 적응도 못하고 원로에 너무  피로하여 경기도중 세 사람이나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골도 9골이나 먹고 패배하였지만 정말 열심히 싸웠다고 한다.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한국 국민들이 고생하며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안 헝가리 국민들과 월드 컵 진행 주최 본부에서 숙박지 지정과  모금을 해서 도와주었다는 다큐멘터리가 며칠전 KBS TV에서 방송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비추어볼 때 얼마 전까지는 헝가리가 쏘련의 위성국으로 사회주의 체재 당시에 국가 성장률이 더디어 현재의 한국보다 낮은 경제 수준에 이르지만 문화와 역사를 살펴보면 한때 한국보다 잘 살았던 나라이었고 유구한 문화와 전통이 서려 있는 나라이다.

   부다 성이 있는 겔레르뜨 언덕의 전망대는 고도가 230m 정도 된다.  다뉴브 강이 시가지를 가로 질러 흐르는 풍경이 보이고 다뉴브 강을 경계로 해서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에 가로 놓여 있는 “세처니란치” 현수교가 다뉴브 강을 더욱 운치 있게 조화 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강가에는 다뉴브 강 유람선들이 줄지어 정박하고 있었다.
   세처니란치” 영화 “글루미 선데이” 주제곡을 듣고는 사람들이 자살을 자주 한 다리로서 알려져 있다.

   “글루미 선데이” 영화는 Original Title: Ein Lied von Liebe und Tod - Gloomy Sunday
이며 제작년도는 1999년 독일/헝가리에서 감독,각본: 롤프 슈벨(Rolf Schubel)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국내 개봉은 2000년10월21일 이며 재개봉은 2003년05월31일이다.
원작은 1988년 발표된 닉 바르코의 소설 '슬픈 일요일의 노래'에서 음악은 데트레프 프리드리히 페테르젠(Detlef Friedrich Petersen)이 담당하였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199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작은 레스토랑, 50년 전 단골이었다는 한 독일 사업가가 방문한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연주되는 글루미 선데이를 듣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60년 전, 레스토랑의 사장 자보와 그녀의 여인 일로나, 그리고 피아니스트 안드라스가 있었다. 안드라스는 일로나의 생일선물로 글루미 선데이를 작곡해서 들려주고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때, 레스토랑을 찾은 독일인 한스, 첫눈에 반한 그는 일로나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그리고 안드라스의 사랑을 느낀 일로나는 그와 뜨거운 밤을 보낸다.
   자보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기 싫어 그녀의 반쪽이라도 갖겠다고 말하고 세 사람만의 특별한 사랑이 시작된다. 글루미 선데이는 음반으로 제작되고 히트 한다.
   그러나 그 곡을 듣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가슴앓이를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군의 유태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유태인 자보는 독일군 장교가 되어 온 한스와 옛 우정으로 일시적으로 생명을 이어나가지만 결국  한스는 일로나와 자보의 사랑의 질투심으로 자보를 가스실로 보내고  독일 제국주의에 정책에 충실한 한스는 유태인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가고 결국 안드라스도 자살한다.

   일로나 뱃속에는 자보의 아이가 이미 임신하고 있었고, 모자는 사랑하는 자보의 복수를 위해  긴 세월을 기다린다.
   전쟁이 끝나고 사업가로서 일로나 레스토랑을 찾았던 독일인 사업가, 한스 그는 피아노 위에 놓인 일로나의 초상 사진을 보며 글루미 선데이를 듣다가 일로나가  차에 탄 독약을 마시고 지난날의 죄 값을 받는다. 』

Gloomy sunday
(lyrics: Sam M Lewis)

Das Lied vom traurigen Sonntag
다스 리이트 폼 트라우리겐 존타크
우울한 일요일의 노래
노래: 에리카 마로잔(erika marozsan)


Trauriger Sonntag, dein Abend ist nicht mehr weit
트라우리거 존탁, 다인 아벤트 이스트 니히트 메어 바이트
우울한 일요일, 저녁이 멀지 않았어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가는 우울한 일요일 오후의 이야기군요.

Mit schwarzen Schatten teil ich meine Einsamkeit
밑 슈바르첸 샤튼 타일 이히 마이네 아인잠카이트
나는 내 고독을 검은 그림자들과 함께 나누지
검은 그림자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요.

Schliess ich die Augen, dann seh ich sie hundertfach
슐리이스 이히 디 아우겐, 단 제에 이히 지 훈데르트파흐
눈을 감으면, 그것들의 모습이 수없이 보여
눈을 감으면 수없이 보이는 그 검은 그림자들의 모습...혼령들의 모습이겠지요.

Ich kann nicht schlafen, und sie werden nie mehr wach "spiel fuer mich"
이히 칸 니히트 슐라펜, 운트 지 베르덴 니 메어 바흐 "슈피일 퓌어 미히"
나는 잠들 수 없어,그리고 그것들은 깨어나지 않아 "나를 위해 반주해 줘"
나는 잠들지 못하고, 떠도는 혼령들은 깨어나지 못하고...

Ich seh' Gestalten ziehn im Zigarettenrauch
이히 제에 게슈탈텐 치인 임 치가레텐라우흐
나는 담배 연기 속에서 형상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봐
그 검은 그림자들, 즉 죽은 자들의 혼령이 담배 연기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이루는군요.

Lasst mich nicht hier, sagt den Engeln ich komme auch
라스트 미히 니히트 히어, 작트 덴 엥엘른 이히 코메 아우흐
나를 이곳에 내버려두지 마, 천사들에게 말해 줘, 나도 가겠어
죽음을 동경하는 내가 그 혼령들에게 하는 말이지요.

Trauriger Sonntag
트라우리거 존탁
우울한 일요일

Einsame Sonntage hab ich zuviel verbracht
아인자메 존타게 합 이히 주빌 페르브라흐트
외로운 일요일을 나는 너무 많이 보냈어
내가 외롭게 보냈던 그 많은 일요일...

Heut mach ich mich auf den Weg in die lange Nacht
호이트 마흐 이히 미히 아우프 덴 벡 인 디 이안게 나흐트
오늘 나는 긴 밤 속으로 길을 떠날 거야
오늘 나는 자살을 결심하고...

Bald brennen Kerzen und Rauch macht die Augen feucht
발트 브렌넨 케르첸 운트 라우흐 마흩 디 아우겐 포이흐트
곧 양초가 타오르고 연기가 눈을 적시겠지
산 자는 죽은 자를 위해 촛불을 켜고... 눈물 짓고...

Weint doch nicht,Freunde,denn endlich fuehl ich mich leicht
바인트 도흐 니히트, 프로인데, 덴 엔들리히 포에엘 이히 미히 라이히트
그렇지만 울지마, 친구들아, 나는 드디어 홀가분해
슬퍼하지마 친구들아, 나는 괜찮아...

Der letzte Atemzug bringt mich fuer immer heim
데어 레츠테 아템추크 브링트 미히 퓌어 이머 하임
마지막 숨이 나를 고향으로 영원히 데려가겠지
마지막 숨결과 함께 나는 영원한 고향으로 갈 거야...

Im Lande der Schatten da werd ich geborgen sein
임 란데 데어 샤텐 다 베르트 이히 게보르겐 자인
그림자들의 나라에서, 거기에서 나는 안식을 찾을 거야
그 혼령들의 나라에서 나는 편히 쉴 거야...

Trauriger Sonntag
트라우리거 존탁
우울한 일요일

Gloomy sunday 를 여러 가수의 목소리로 들어보세요

http://myhome.naver.com/lover719/ost.html

   “글루미 선데이“ 영화 이야기를 하자 버스 운전기사가 영화를 아는 체 하며 나를 보고 웃어 보인다.
   요한 스트라우스 작곡의 “ 다뉴브강의 잔물결”을 연상하며 맑게 개인 부다페스트 시가지를 둘러보며 일행들은 기념사진 촬영하기에 부산하다.
   이곳의 기후는 햇볕이 쬐는 곳에는 덥고 그늘진 곳은 쌀쌀한 기온차를 나타내는 곳이다.
유럽의 지도를 펼쳐보면 중부 유럽에 위치하여 있으나 헝가리는 동부유럽으로 불린다. 겨울의 평균 기온은 -1℃ 여름의 평균기온은 22℃ 이다.
   동유럽 국가 중 제일 아래쪽에 위치하여 따뜻한 나라이다. 그러나 일교차가 심하여 이 나라를 방문할 적에는 따뜻한 스웨터를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헝가리는 동사, 형용사를 불규칙하게 표현하는 나라이다.  예를 들면
Jeo (요) 좋다.
해뜨기 전과 해지기전 인사말/ 요! 노포트
고맙다/께세넴
아침인사/ 도브리젬
등이다.
   총 63,000㎢ 면적에 45,000 ㎢ 농지를 가지고 있는 헝가리 국토는 60% 가 농산물 수확해서 수출하며 농산물은 가격이 저렴하나 생필품은 수입에 의존 하고 있다.
물가는 우리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나라는 국민소득 44%는 세금으로 납부된다. 급료를 받아 생활하는 서민들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주상 복합식 건물이 많고 1928년 빠투리카 비타민 C 를 생산한 곳이다.
   이슈투판  대성당 페스트 지역 안드리 시 거리는 파리의 샹제리제 거리  도시계획을 본따서 만들었다.
   헝가리 광시곡 (franz liszt (1811 - 1886))을 만든 리스트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노천카페등 만남의 장소 리스트 아카데미 와 리스트 음대가 위치해있다.
   56년10월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자 소련군이 개입하여 리옹광장에서 소련군에게 약 2천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통영  출신 김춘수 시인은 부데페스트에서 “ 소녀의 죽음”을 쓴 곳이기도 하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김 춘 수

다뉴브 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 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딩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 온 수 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
부서진 네 두부는 소스라쳐 30미터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목퉁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 놓아 올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은
감시의 일만의 눈초리도 바칠 수 없는
다뉴브 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 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 스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 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 사장의 말 없는 모래 알을 움켜 쥐고
왜 열세 살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한국의 열세 살은 잡히는 것 하나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돈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도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 든다.
기억의 분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투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뿌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불면의 밤, 왜 모든 기억을 나에게 강요하는가.
나는 스물 두 살이었다.
대학생이었다.
일본 동경 세다기야서 감방에 불령 선인으로 수감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내 목구멍에서
창자를 비비 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머니, 난 살고 싶어요!)
난생 처음 들어 보는 그 소리는 까마득한 어디서,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이면서.......
나는 콘크리이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고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누가 나를 우롱하였을까.
나의 치욕은 살고 싶다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내던진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표의 치욕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소녀의 뜨거운 피 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아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의 불면의 담담한 꽃을 피운다.
인간은 쓰러지고 또 일어설 것이다
.
그리고 또 쓰러질 것이다.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악마의 총탄에 딸을 잃은 부다페스트의 양친과 함께
인간은 존재의 깊이에서 전율하며 통곡할 것이다.
다뉴브 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딩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 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 바다에 쥐새끼보다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다음은 헝가리 영웅광장을 방문하였다.
   영웅광장은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위해 만들어진 광장이라고 한다. 외국 국빈이 방문하면 제일먼저 이곳에 참배를 하고 공식 일정을 시작하는 곳이다.
   7 개의 기마상과 36m 가브리엘 천사상이 종교와 국가관을 일치하는 이미지라고 한다.
중앙으로부터 왼쪽 7개 동상은  헝가리 역대 대왕 동상을 설치하고 중앙으로부터 오른쪽 7개 동상은 외세침략에 대항한 독립투사 영웅 동상을 설치하였다.
   광장을 중심으로 오른쪽 건물은 현대미술관이 왼쪽은 고전 미술관으로 된 두개의 미술관 건물이 양쪽으로 배열되어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1896년 착공하여 1929년에 완공한 이 광장 조각상은 1900년 세계만국 박람회에서 동상 부분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곳에서 조직사진을 촬영하고 각 개인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영웅광장에서 곧 출발하여 부다페스트 시내로 진입하여 각자 자유 관람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 주어져 의정부 신민수와 페스트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지하 쇼핑 가게에 들렀는데 그곳에 등산용 스테인레스 양주병을 직접 수공으로 글자를 새겨 넣어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신민수가 가격을 물어보니 한화 15,000 원 정도한다고 한다.
그래서 전면에 “Hungary Budapest” 후면에 “Ok Soon Ryoung” 라고 로고를 새겨 넣고 일행과 만나기로 한 지점에 도착하니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곧 식당으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고 어둠이 서서히 내리며  강변 옛 고 건물에  조명등이 켜지고 있는  다뉴브강변 유람선에 올랐다.
   프랑스 파리 세느 강 유람선에서도 강변 야경을 보았지만 다뉴브 강의 야경은 프랑스 파리와는 좀 다른 특색이 있었다. 이곳은 조명을 억지 로 만들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조명만이 설치가 되어 있어  운치가 있었다.
   부다 왕궁의 오색 창연한 간접조명의 연출은 왕궁을 더욱 신비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도록 하였고 강변의 건축물에서 흘러나오는 차분하고 점잖은 색감의 조명은 강가의 건물들을 더욱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연출하고 있었다.
   “글루미 선데이” 주제곡을 듣고 자살을 많이 했다는 “세처니란치” 현수교의 교각 조명은 그 색을 하늘에 다 뿌리지 못해 다뉴브 강 물위에 까지 길게 화려한 색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풍경은 우리 일행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요한스트라우스의 왈츠 곡 “ 다뉴브 강의 잔물결”연주가  고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선상위에서 저녁에 반주삼아 먹은 술에 취해 모두 들뜬 분위기로 야경을 배경삼아 사진 찍기에 열중하며 즐거운 선상 유람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온 시간은 거의 1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내일은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육로를 통해서 이동한다고 한다. 피곤하고 다뉴브 강 유람선 기분이 가라앉지 않아 이선생과 소주 한 병식을 나눠 마시고 술기운에 잠이 들었다. / 제4편 오스트리아 비엔나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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